고1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던, 내 친구가 종종 소식을 보내온다. LA에서 저소득층의 복지와 삶의 향상을 위해 때로는 연방펀드국과 맞서, 신변의 위협까지 감수하며 맹렬히 살아온 나의 장한 친구다. “Moon River, Danny Boy” 등을 감미롭게 불렀었고, 팬데믹 전까지 교회에서 영어바이블 클래스를 가르쳤던 그 친구가 지금은 심장약을 5가지나 먹고 있다. 건강이 좋아지면 이민 초 매일 울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청소년기 고향, ‘몬트레이’로 함께 드라이브를 가자고 노래를 부르는 나의 친구.
팬데믹 발발 직전에 세상을 떠난 그 남편의 장례식에 다녀온 것이 어언 3년 전. 그후 혼자 코비드 1차 접종 후 심한 후유증으로 우편물 체크하러 나갔다가 집앞에서 쓰러진 걸 앞집에서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도 있었다. 혼자 살면서 제대로 섭생도 못하다가, 겨우 2차 접종은 했지만 아직 외출도 자제하며 지내는 형편이다. 게다가 남편이 세상을뜨기 전, 사놓은 인터넷 구입물들의 비밀번호를 알 길이 없어 그에 대한 세금 지불 문제로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있다는 소식도 보내왔다. 그 때문에 너무 힘들어 예상치 않게 갑자기 떠난 남편이 이제는 그리움 보다 원망스럽기까지 하다는 나의 친구.
그 친구가 엊그제 또 소식을 보내왔다. 최근에 가까스레 정리했던 임대 빌딩에 살던 청년이 강제퇴거를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함께 살던 청년의 엄마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며 그 아들에게 계속 그곳에서 살게 해주고 떠났는데, 거주자의 명단에 아들 이름이 등록이 안 되었었는지 새 빌딩주인이 청년에게 아파트에서 나가라고 한단다.
그녀의 손을 떠난 이제는 무관한 청년의 일이지만, 그의 전화 호소를 받고 “돈밖에 모르는 그 새 건물주와 끝까지 법적으로 가 볼까봐”, 착하기 그지없는 친구가 전화에 대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아무런 대안이 없어 “어쩌면 좋으냐” 되뇌는 나.
십여년 전 내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사왔을 때, LA에서 9시간이나 빗속을 달려왔던 친구. 다음날 나를 태우고 또 달려가 보여주었던, 그 고등학교 운동장과 높은 스탠드 층계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두고온 친구들이 그리워 태평양 너머 고향쪽 수평선을 바라보며, 돌 층계 스탠드에 앉아 매일같이 울었다는 나의 친구. 언제 그 친구와 그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 태평양 너머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김찬옥(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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