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으니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여명의 아침처럼 내 머릿속도 어슴푸레하다. 잠옷에 스웨터 하나 걸치고 커피 한 잔과 핸드폰을 들고 마당으로 나간다. 선뜻한 공기가 여름답지 않아 잠시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새의 지저귐과 이웃 마당 분수대의 졸졸거리는 물소리, 점점 더 잦아지는 차 소리를 듣다 보면 몸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한때 이 시간에 난 잡초를 뽑았었다. 아직 다 깨지 않은 머리도 집중해 잡초를 뽑다 보면 정신이 들고, 머릿속도 가지런해져 아침 일과로 좋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열심일 떄는 매일 두 팔을 넓게 벌려 그려지는 원의 크기만큼을 숙제로 정해 뽑기도 했었다. 보기 흉하고, 다른 식물과 경쟁해 자라며 성장을 방해하고, 곤충들의 서식지가 되는 잡초는 정원을 지키려면 시간을 내어 모두 뽑아야만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잡초의 번식력과 생명력은 나의 노력보다 늘 앞섰다.
조금은 잡초 제거에 지쳐가던 어느 해 봄. 아직 찬기가 있는 정원에 영리하게도 햇살 많은 곳만을 찾아내 노랑색, 앙증맞은 꽃을 피워 낸 뱀딸기(False strawberry) 꽃. 심어 가꾸지도 않은 것인데도 잔잔하게 무리 지어 핀 것이 이쁘기도 하고, 양지꽃(Cinquefoils)과 너무 닮아 잡초지만 뽑지 않고 그냥 두기로 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둘러보니 이것저것 잡초지만 두고 볼 것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름도 고운 별꽃(Chickweed)이다. 별을 닮은 그 꽃잎이 깜깜한 밤 정원에 반짝반짝 빛나는 상상으로 이것도 적당히 두었다. 괭이밥(Creeping woodsorrel)도 두고 보는 잡초 중 하나다. 옛날에 마당에서 키우던 개나 고양이가 소화 기관에 탈이 났을 때 이 풀을 뜯어 먹고 치유한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잡초를 다 두고 보지는 않는다. 설사 자연주의 농법에서 잡초가 악화된 토양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중요한 생태계 서비스를 하기에 뽑지 않는다고 해도 난 뽑을 것은 뽑는다. 또 민들레(dandelion)처럼 영양가 있는 음식이나 약효를 가지고 있다 해도 다 두고 보지는 않는다. 그저 몇 가지 잡초 제거의 해방으로 정원 가꾸는 행복이 더해질 만큼만 두고 본다.
잡초로부터의 해방. 내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으로부터의 해방. 모든 해방.
”해방”이라는 단어의 묵직함에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유가 주는 그 기쁨을 알기에 난 도전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나 자신의 딱딱해진 사고의 틀을 깨버리는 데서부터였던것 같다.
잡초가 있는 마당. 또 한 가지 내 해방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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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혜 (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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