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어느 날이다. 내 작은 거실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문득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내가 집안의 모든 공간을 차지하고 내 마음대로 쓴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유하는 공간에 대한 이 특별한 느낌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도 아니고 몬트레이 지역의 비싼 주택비 때문도 아니었다.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느라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가 힘든 주부님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또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자신만의 방을 갖게 되었을 때 주부님들이 느낀 기쁨을 읽은 기억도 아주 오랜만에 되살아났다.
사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공간만 공간이 아니다. 몇 년 전 운전을 하다가 우연히 FM 라디오에서 바흐의 피아노 두 대를 위한 협주곡이 나오자마자 나는 차 안이 마치 내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밀실처럼 느껴졌다.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참으로 특별한 정신적 공간 체험이었다. 영어에도 “You have a special place in my heart”라는 표현이 있지 않는가? 2006년에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평소에 “남편만 바라보고 살지 말고 여자도 자기 세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혼자 틈틈이 다양한 취미활동들을 시도하시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셔서 대화를 하시는 등 당신이 원하는 정신적 공간을 열정적으로 설계하셨다. 앞마당에 빨간 장미들을 심으시고 마지막까지 예쁘게 가꾸셨듯이…
2020년에 팬데믹이 발발한 이후 우리 각자의 물리적 공간은 생사를 위해서 강요된 공간이 되었다. 팬데믹 공포로 재택의무화(shelter in place)가 시작될 때 내가 다니는 한국 성당의 교우님들이 혼자 고립되어 딱하다고 안부전화도 해주시고 카톡도 주셨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독신이니까 같이 사는 사람으로부터 걸릴 위험이 없어서 너무 좋다고, 드디어 ‘독신자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난 2년동안 나는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공간에서 대인관계를 삐그덕거리게 한 나의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해야 했고 그동안 하기 싫었던 요리와 청소, 운동 같은 일상의 기본적인 것들도 방역 때문에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집안살림 솜씨가 많이 늘었다. 결국 나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한 물리적 공간을 통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열린 정신적 공간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뒤늦게 팬데믹 덕분에 철이 든 것 같다. 새롭게 집안을 단장하면서 초대할 손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정혜선(몬트레이 국방외국어대학 교수)정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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