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폭우가 몰아치고 난 뒤 나는 이유 없는 복통에 시달렸고, 며칠 전 새벽 내내 배를 잡고 동동 구르다 결국 예비 신랑을 따라 가까운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작은 외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응급실 대기소에는 의자 8개와 에어컨 한 대, 다 가려진 작은 유리창 하나가 전부였고, 내부에 어설프게 연결된 방문 안에서는 핸드폰으로 무슨 영상을 그렇게 보는지 킥킥대는 안내원의 웃음소리만 이따금 들려올 뿐이었다.
아무런 지침도 없이 40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드디어 이름이 불렸고, 바로 옆 컨테이너로 옮겨 들어가 처음으로 간호사의 얼굴을 보는데 마치 한참을 찾고 있던 보물을 발견한 듯 기뻤다. ‘아, 이제 살겠구나…!’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려는 순간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우리는 단꿈에서 깨어났다. 초기 증상 중 오한을 느꼈었다는 말 한마디에 PCR 검사를 받아야만 진료를 받을 수 있고, 그 PCR 검사를 받으려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해야 하는데, 격리 방이 모두 차서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전혀 듣지도 않는 약을 종류별로 다 먹어가며, 나는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고통과 정말 찐-하게 싸워야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가까운 내과를 방문해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았는데도 전혀 호전이 없어 오후에 다른 내과를 한 번 더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카리스마 있는 여성분이셨는데, 처음 나를 보자마자 내 배를 쿡쿡 눌러 보시며 내 고통의 정도를 물으시고는, 빨리 응급실로 가서 CT 촬영과 혈액검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셨다. 예비 신랑이 빛의 속도로 새로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데려다준 덕에, 또 다행히 의사분께서 혹시 몰라 써 주신 의뢰서 덕에, 우리는 빠르게 접수를 마치고 짧은 대기 시간을 거쳐 안으로 들어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오빠의 손을 꼭 붙잡고 일어나 걸어가는데, 예비 신랑은 아직 가족이 아니기에 보호자로 함께 들어갈 수 없다는 직원의 말이 들렸다. 괜찮다고 혼자 씩씩하게 들어갈 수 있다며, 밖에서 계속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은 붙들어 매라며 웃고 있는 오빠를 두고 돌아서는데, 순간 참고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아픈 건 어떻게든 견딜 수 있겠는데, 지옥 같았던 시간 동안 곁을 떠나지 않고 힘들어도 같이 힘들자 하며 나를 지켜준 저 사람의 빈자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느낀다. 아무도 없이 혼자 밖에서 밥도 못 먹고 걱정하고 있을 오빠가 걱정돼 다시 이를 악물고 마지막 에너지를 쥐어짜 본다.
<이수진(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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