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Proust)는 한겨울 날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한입 베어먹다가 어릴 적 고향에서 그의 숙모가 만들어주던 마들렌의 향기를 떠올렸고, 그 향기가 곧 프루스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향기가 기억을 이끌어내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The Proust phenomenon)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옛 추억을 강하게 떠올리게 하는 프루스트 현상을 경험한다.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일 수도 있고,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갔던 첫 번째 소풍에서 맡았던 라일락 꽃향기일 수도 있겠다. 시원하게 비가 내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물 잔뜩 먹은 흙에서 은은히 퍼지는 향기를 맡을 때면, 한국에서 비온 뒤 질퍽거리는 운동장을 지나 학교 안으로 뛰어들어가던 날들이 떠올라 나는 그런 날의 향기를 “한국 냄새”라고 부른다. 향기는 정확히 몇 날 몇 시에 일어난 일을 불러온다기보다는, 그 시절을 입체적으로 감싸고 있는 수많은 감정을 한꺼번에 꺼내준다. 매일 밤마다 얼굴에 바르는 나이트 크림 향기에서는 어린 나를 앉혀 놓고 살색 크림을 손가락에 조금 덜어 소중하게 조금씩 바르던 할머니가 살고 있고, 내가 맡는 모든 커피향에는 매일 아침을 커피로 시작하는 아버지가 살고 있고, 숲을 지날 때 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모든 향기에는 목수 일을 하는 나의 사랑하는 예비 신랑이 살고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 한 명이 빵 굽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나는 그 친구가 만들어준 마들렌을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는데, 친구는 나에게 갓 구워진 마들렌을 건네주며 내가 앞으로 마들렌을 먹을 때마다 본인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뿌듯하게 예언했다. (그리고 그녀의 예언은 적중했다.) 그때에는 마들렌의 맛이 나를 각인시켰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어디에서든 갓 구운 빵의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나는 친구의 그 들뜬 마음을 항상 생각한다. 기록하기 힘든 향기일수록 특별한 향수(鄕愁)를 불러내기 때문일까, 가끔 좋은 감정이 가득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향기를 맡게 될 때면 그 자리에 잠시 멈춰서 나는 그 기분을 온전히 만끽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내가 살아오며 사람들에게 남긴 추억에는 어떤 향이 있었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떤 향기를 남기며 살아가야 할지.
<이수진(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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