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오빠는 둘 다 엄청난 수다쟁이다. 미국과 한국에 각자 떨어져 있으면서도 일단 영상통화를 시작했다 하면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편인데, 그날도 역시 별것 아닌 대화들을 하며 키득거리다가 요즘 우리에게 가장 뜨거운 감자인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학생이 4시간 동안 사람의 얼굴을 그려 제출하는 경연에 참여했다고 가장해보자. 가장 자신 있는 코부터 시작해서 최선을 다해 집중하며 그리고 있는데, 무심코 시계를 보니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후다닥 한 발짝 떨어져서 그림을 바라보니 아직 눈과 입은 백지상태고 얼굴 윤곽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그제야 두 눈을 그려보려 하는데, 코에 썼던 만큼의 집중도가 생기질 않는다. 마음은 촉박해지고, 지금까지 쏟았던 정성대로 했다간 분명 그림은 미완성으로 제출될 것 같아 엉터리로 눈에 점 두 개를 찍고는 좌절해 버린다. 30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자 그녀는 결국 연필을 내려놔 버리고, 예상대로 그림은 미완성이 된 채로 실격된다.
때때로 우리는 삶의 극히 일부분에 과한 집착을 한다. 누구에게는 그것이 직장일 수도, 인맥이나 취미생활일 수도, 자녀들의 행복한 삶일 수도, 나의 영원한 건강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 집착이 오롯이 일에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업무 이메일로 시작해 잠들기 전까지 마지막 이메일을 보내고 잠이 들어야 마음이 편했다. 일하지 말아야 할 때도 일해야만 소화가 되는 것 같고,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한쪽에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우리 직원들 생각을 하느라 마음이 늘 분주했다. 물론 열심히 일한 뒤 오는 성과는 굉장했고 늘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돌아왔지만, 나의 그 ‘열심’은 결국 내 그림의 다른 부분들을 모두 백지로 만들어버리는 장본인이기도 했다.
오빠는 그런 나의 뒷덜미를 슬쩍 끌어당겨 삶이라는 큰 그림을 보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속에 내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었는지 설명보다는 눈으로 직접 보여주려 노력한다. 오빠를 만나고 나서야 일 외에도 내가 그려야 하는 부분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일을 잘하는 것만큼이나 건강한 삶의 습관들을 만들어야 하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함께 맛있는 외식 한 끼 할 줄 알아야 하고, 친구들의 생일이 오면 카드 한 장을 써줄 줄 알아야 하고, 둘이서 함께 듣는 라디오 사연에도 웃고 울 줄 알아야 한다. 버터를 빵에 고르게 발라야 맛있듯,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삶의 모든 부분에 균형을 잡으며 살아갈 때가 곧 우리의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일 거라는 오빠의 마지막 말을 마음에 깊이 담아본다.
<이수진(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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