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나에게 고백한 지 딱 365일이 되던 지난 주말, 우리는 역사가 깊고 아름다운 교회에서 약 180명의 하객을 모시고 따뜻한 가을 결혼식을 올렸다.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고풍스러운 교회에서 예식을 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었기에, 이 귀중한 공간을 위해 준비해야 할 모든 것을 둘이서 직접 준비해보자는 무모한 약속을 했다.
제일 먼저 지하 식당 대신 야외 마당에 긴 테이블을 설치해 모두가 함께 앉아 교회의 멋진 풍경을 즐겨보자 했다. 여러 대여 업체를 찾아다니며 테이블과 웨딩용 의자를 결정하고 나니, 이번엔 테이블 장식이 마음에 쓰였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어울릴 만한 소품들을 직접 골라 결혼식 전날까지 테이블을 꾸몄는데, 고군분투하는 우리 둘이 안쓰러웠는지 교회 성도분들, 부모님과 이모, 친구까지 찾아와 늦은 밤까지 함께 야외 테이블을 세팅하고 레이스를 접고 촛대를 올리고 불을 켜고 꽃가루를 장식했다. 신부대기실을 위해 신랑이 직접 널찍한 포토월을 만들었고, 좋은 원목을 사용해 신랑 신부 팻말을 만들었다. 답례품으로 돌릴 떡 박스에는 기본으로 제공되는 문구 대신 손글씨로 메시지를 직접 적어 붙였고, 의미 있는 노래를 한 곡씩 모아 배경 음악으로 쓰일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예식 순서지와 메뉴지마저 직접 디자인해 원하는 글꼴과 종이 재질을 정해 제작했다. 그렇게 큰 노력을 가했음에도, 늘 그렇듯, 우리의 능력은 부족했다. 예식 당일 하객들이 마실 생수도 까먹어버렸고, 게스트 북도 잊어버렸고, 메인으로 올려놓고 싶었던 액자도 사지 못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싶었던 사과주스와 탄산수도 결국 준비하지 못했고, 그 외에도 놓치고 있는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완벽히 아름다운 하루를 선물 받았다. 까먹은 웨딩 케이크는 나의 언니가, 잊고 있던 게스트 북은 친구가, 준비하지 못한 생수는 도련님이 준비해주었다. 목사님의 주례와 성찬식의 은혜로움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고, 미국에서 온 귀한 친구가 불러준 성가에 모두가 은혜를 받았고, 사랑하는 조카들의 화동 행진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꼬마들은 바닥에 앉아 꽃을 벽돌에 끼우며 키득거리고, 어른들은 노랫소리를 따라 나비처럼 어깨를 들썩였다. 예배당을 밝혀준 생화는 예식 후 모두가 사이좋게 나눠 가졌고, 예쁘게 플레이팅 된 음식을 나눠 먹으며 모두가 못다 한 대화들을 나누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둘을 위한 결혼식보다는, 우리는 우리가 정말 바랐던 대로 소중한 인연들과 모두 함께하는 소풍을 가졌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일 선물 같은 하루를.
<이수진(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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