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가 최고야” 하며 배치한 가구도 몇 년 지나면 어디로 옮기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때가 온다. 그럴 땐 방에서 거실로, 방에서 방으로 심지어 같은 방에서도 좌우로 위치만 바꾸어도 아주 색다른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정원은 이것보다 훨씬 신나는 장소다. 원하기만 한다면 실내보다 자주 또 새롭게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싹을 내어 꽃이 피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쉽게 옮기기 힘든 나이 많은 나무가 있기는 하지만 이 나무를 큰 배경으로 여러 테마를 정할 수 있고, 기다림의 시간에도 식물은 변화하기 때문에 정원 가꾸기는 쉽게 싫증 나지 않는다.
올해 내 정원의 테마는 장미와 국화였다. 병충해가 많아 꽤 오랫동안 키우지 않았던 장미. 그러다 지난해 이맘때쯤 꽃봉오리는 꺾여 있고, 잎은 마른 채, 할인 딱지 붙어 있던 장미 몇 그루를 가져왔었다. 몇 달을 정성 들이니 마른 잎 자리에 하나 둘 새 잎이 나고, 반들반들 윤이 도는 잎으로 무성해지더니, 올 오월부터 꽃을 피워, 아직까지도 건강하게 달콤한 향기를 뿜으며 꽃이 피고 진다. 또 지난해 가을 삽목으로 시작했던 국화도 이번 주부터 여기저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꽃송이가 작고, 키만 길게 자란 걸 보면 완벽한 성공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내년엔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풍성한 국화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장미와 국화가 올해 대표 식물이었다면 화분의 위치 변화와 삽목은 올해 또 다른 테마의 가드닝이었다. 몇 해 열심히 키우던 제라늄은 올해 화분 크기도, 수도 줄였다. 번식도 쉽고, 기르기도 편해 열심히 길렀는데 살짝 싫증이 나서, 올핸 그 수 보다 화분의 모양과 위치에 초점을 맞춰 길렀다. 긴 화분과 바구니 화분(hanging basket planter)에 심어 바위와 아젤리아(Azalea) 나무 사이에도 두고, 정원 구석에 걸어도 두었더니 피고 지는 제라늄 꽃이 마치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초롱불 같다. 가뭄이 심한 올핸 물 절약도 할 겸 텃밭 농사와 새 식물 들이는 것을 줄이고, 기존에 있던 식물에서 물꽂이, 삽목, 휘몰이 등의 번식 가드닝을 했다. 꽤 무성한 뿌리가 생긴 마가렛, 실뿌리를 잔뜩 단 카네이션, 꽃망울까지 보이기 시작한 아메리칸 블루, 모두 다 성공할 순 없지만 내년 정원 테마는 어쩌면 이들이 될 수도 있을 듯싶다.
마음이 답답할 때 가구 배치를 바꾸어 집안 분위기를 바꾸듯 난 매해 정원 테마를 바꾸어 본다. 물론 매번 그 변화가 성공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변화를 위해 꿈을 꾸는 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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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혜 (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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