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은 내 생의 “숨비소리”였다. 어느덧 내 가슴의 창을 열고 숨비소리를 낸 지도 3개월이 지났다. 뜨겁던 8월을 시작으로 매주 여성의 창을 통해 내 해묵은 가슴의 창을 열게 된 것은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슬펐던 일, 즐거웠던 일, 미움도 좋아함도 알콩달콩 모두가 그립고 아름다운 추억이었고 결국 사랑이었다.
독불장군 유별난 아버지에 늘 따뜻했던 울엄마 사랑 아래 우리 칠남매가 지지고 볶으며 지내온 나날이 새삼 어제 일처럼 새록새록 그립다. 똑똑하고 착한 사람이나 별나고 조금 삐뚤어진 사람이나 형제고 자매며 내 부모님이다. 그때는 왜 그리도 미워했는지, 좋은 일은 당연한 듯했고 나쁜 일엔 발끈 화내고 가족탓만 했던 지난 시간들이 미안하고 후회가 가득했다. 좀 더 좋은 환경을 갈망하고 현실에 감사할 줄 모르던 내 지난 시간들이 얼마나 성숙하지 못한 태도였는지 반성을 넘어 애석하기 그지 없었다. 누구보다 돈독했던 우리 칠남매, 힘들게 했던 아버지의 별난 성격덕에 우리 형재애는 더더욱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울어도 혼자가 아니였고 웃을 때도 늘 함께였기에 지금 내가 웃고 있다.
어제는 꼴통 둘째언니의 69세 생일이었다. 늘 함께 했던 엄마도 이젠 올 수 없는 저 세상 분이 되어 안계셨고 마침 셋째언니마저 한국 여행중이어서 본의 아니게 우리 가족과 언니 지인 셋뿐인 조촐한 생일을 보냈다. 늘 함께 할 것만 같았던, 사랑했고 좋아했던 사람들이 추억 속으로 가고 없었다. 너무 쓸쓸하고 허전해서 언니가 울 것만 같았다. 아니 울 것 같은 건 나였는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가 볼세라 눈물을 훔쳤다.
이달 25일은 또 내 생일이다. 생일이면 왁자지껄하던 우리 가족들. 때론 번거롭고 힘들게도 느꼈던 때가 아련하게 그리워진다. 이 세상이 “나홀로”라면 얼마나 힘들고 아니 무섭기까지 한 일인가!
다시 한번 내 마음의 창을 열고 가슴 저편 깊이깊이 잠들어 있는 영혼까지 끄집어내어 가을하늘 저 푸른 창공 위로 긴 “숨비소리”를 내어본다. 어느새 하늘 저편에 “나도!”라고 따뜻한 위로의 말로 다독여 주던 친구가 있었고 아픈 나에게 힘내라며 등 두드리며 꼬옥 안아주던 지인도 있었으며 “으쌰으쌰!” 함께 힘내 주던 내 가족들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가슴 가득히 뭉클한 그리움과 함께 눈가에 “핑!” 도는 뜨거움, 바로 모두가 “사랑!”이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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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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