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을 말씀도 없이 침상에서 다른 세상을 사시는 내 엄마. 99세로 보이지 않는 해맑고 고우신 엄마에게는 그러나 좀처럼 쇠하지 않는 마술의 힘이 존재한다.
엄마의 첫 작품인 나의 출생 이후 나에게는 언제나 엄마의 마술 병풍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려웠던 그 시절, 서로 먹으려고 펼쳐지는 억세고 장난스런 네 오빠들의 반찬 침 바르기 작전에 패한 나는 언제나 뚝! 하는 엄마의 마술에 눈물이 멈춰지곤 했다. 굽이 높아 휘청거리는 발걸음에도 따각따각 소리가 나는 엄마의 뻬닥구두는 미래를 꿈꾸는 소꿉놀이였고, 엄마가 산타할아버지에게 배달시킨 하얀 피겨스케이트는 추운 겨울의 즐거움이었다.
들창문 쪽이 유난히 시원해서 냉장고를 대신해 항상 과일과 음식이 많았던 그 방을 나는 보물방이라고 불렀는데 친구와 놀면서 조금씩 베어먹은 동그랑땡이 다시 채워지는 엄마의 마술은 끝이 없었다.
어느 날 보물방에서 멋진 소리가 들려와 방문을 여니 엄마가 피아노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동요를 치고 계셨다. 탱크만한 피아노에 앉혀진 그때부터 이어진 내 음악의 길은 엄마의 가장 큰 마술이셨고 그렇게 함께해 온 나의 보물이 너무 낡아 엄마의 손에 끼어 있던 반지로 새 피아노를 만드신 마술은 나를 더욱 연습하게 만든 가슴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추운 겨울날 내 책상 옆에서 부쳐 주시는 동태전은 호호 불며 먹는 최고의 엄마 밥상이었고, 가정수업 숙제로 박음질이 필요할 때 초저녁잠이 많으신 엄마는 거기 놔두라고 하시곤 이내 잠에 빠지셨지만 다음 날 아침 머리맡에는 어김없이 멋진 마술이 놓여 있었다.
그렇게 엄마의 마술 속에 자라가며 처음 여자가 되던 날, 엄마는 나에게 가장 고맙고 멋진 마술을 선물해 주셨다. 생전 처음 가보는 궁궐같은 백화점에 데리고 가셔서 엄마 속옷처럼 생긴 나의 속옷을 사 주셨는데 어쩜 그렇게 신기하고 예쁜지 잠도 안자고 입어보고 또 입어보고. 죄어왔던 콜세트의 그 느낌을 지금도 나는 간직하고 있다.
이민 목회에 힘든 딸사모를 돕기 위해 엄마의 “영원한 내 편” 마술은 여전히 계속되었지만 이제는 힘겨운 눈맞춤의 마술만을 보여주시는 내 엄마. 눈물 없이 기억할 수 없는 엄마의 수많은 마술 작품을 잊지 않으려고 애써 품에 눌러 담으며 오늘도 나는 마술손을 꼬옥 잡고 엄마와 깊은 대화를 나눈다.
“엄마, 멋진 마술 또 보고 싶다” “모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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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임씨는 산호세 동산교회 임택규 목사의 아내이자 메디케어/은퇴재정 설계사이다. 여성의 창을 통해서 일상과 삶의 사연들을 나누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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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임(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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