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지난 가을부터 공립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큰 아이는 프리스쿨을 다니긴 했지만 일주일에 세번밖에 다니지 않아 영어에 익숙하지 않았고 그마저 코로나 때문에 많은 시간 학교를 가지 못해서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드디어 첫 등교일, 새로운 학교에 간다는 것과 어떤 학교를 가는지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설명을 해왔던 덕분에 아무런 거부반응없이 등교를 시킬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주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이가 학교가는 것을 거부하고, 울기 시작했다. 학교 앞까지 가서도 들어가기를 망설이며 울기를 반복했다. 남편과 나는 그 이유를 예상하면서도 큰 아이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왜 학교를 가기 싫은지, 왜 매일 아침에 우는지. 큰 아이는 몇 일 동안을 ‘말로 어떻게 표현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좀 더 생각해본다고 했다. 몇 일 뒤, 큰 아이가 하교길에 남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빠, 내가 말을 하는데 친구들이 이해를 못해.” “친구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잘 모르겠어.” 고심 끝에 털어놓은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남편에게 전해 들은 뒤, 삼일동안을 아팠다. 마음 한구석이 너무 아프고 그 때문에 온몸이 아팠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주 언어로 하는 우리 교육이 과연 맞는 것일까, 내가 부모로서 바른 길을 택한 것일까. 오히려 아이에게 혼돈만 주는것은 아닐까.’ 이 모든 것이 과정이라며 남편이 아무 걱정할 필요없다며 나를 위로했지만, 등교하는 큰 아이의 뒷모습만 보아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천천히 생각했다. 아이를 위해 부모로서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선생님에게 연락해 매주 목요일, 학교수업에 볼런티어(volunteer)로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날에는 남편도 함께였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이의 학교생활을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고, 학교와 친구들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큰 아이는 더 이상 울지도 않으며 등교를 거부하지도 않는다. 매일매일 학교를 가고 싶어하고, 숙제도 도움없이 혼자서 한다. 친구들의 이야기와 학교에서 일어났던 소소한 일을 조잘조잘. 매일같이 밝은 얼굴로 하교를 한다. 큰 아이는 아직도 영어가 부족함이 틀림없다. 그런데 무엇이 이 아이를 변하게 했을까.
이 경험을 통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어른이고 부모이지만, 결코 아이를 앞서서 끌어당길 필요가 없다는 것. 아이의 발걸음에 맞춰 곁에서 든든히 믿고 지켜봐주는 것. 그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안세라(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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