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특별한 의미를 가진 반지가 몇 개 있다. 고등학교, 대학 졸업반지에 이어 결혼반지까지 모두가 귀한 반지들이다. 그후 세월이 흐르며 몇 개가 더 늘었는데 하나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교회 식구들이 챙겨 주신 사랑의 조의금으로 내 손가락에 끼워준 일명 “아버지반지”이다. 24년이 지났지만 디자인도 예쁘고 편해서 지금도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다. 무엇보다도 만지작거릴 때마다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들이 내 마음에 스며들어 사랑을 폴폴 느끼게 해주는 이 반지는 나에게 참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곧 “엄마반지”가 생겨날 예정이지만 아마도 이번에는 엄마가 평소에 가장 좋아하셨던 엄마의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울 예정이다.
신혼 때 우리 부부의 손가락에 항상 같이 했던 결혼반지는 굵어진 손마디로 사이즈가 맞질 않아 화장대 서랍 속에 오랫동안 잠재워야만 했는데 텅 빈 남편의 손가락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솔직히 허전했었다. 그러던 중 결혼 20주년 즈음에 마침 하와이에 방문할 기회가 되어 나는 결혼 날짜와 우리 부부의 이름이 새겨진 커플링을 마련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커플링을 내밀었는데, 한동안 자유로운 손가락이 편했는지 몇 년이 지나도 남편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질 않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설교하는 남편의 손가락에서 반지가 반짝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혼자 끼는 커플링은 의미가 없다 싶어 시큰둥해 처박아 두었던 반지를 찾아 얼른 넷째 손가락에 밀어 넣었다. 역시 커플링은 함께여야 맛이 나는 것 같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커플링이 보이는 내 손가락을 한껏 펴서 이마에 대고는 “아이구 머리야!”를 이쁘게 속삭여 주었다.
반지는 흔히 약속의 증표이다. 커플링의 반짝임 속에 약속을 일깨워보니 손가락 걸고 굳게 맹세했던 약속과, 입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했던 수많은 약속들이 어느덧 빛 바래진 모습으로 내 뒤에 수두룩하게 줄서 있다. 누구에게 어떤 약속을 한 건지 기억조차 뿌연 약속은 너무 부끄러워 치매를 핑계 대며 차라리 치마폭에 꽁꽁 숨겨 놓고 싶다. 혹시 미안함도 없이 무감각하게 지켜내지 못한 나의 약속을 기다리며 저들의 심장이 아파하지는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한 해 동안 적어간 수첩을 체크해본다.
누가 지금이 가장 빠른 시점이라 했던가. 그 말에 힘입어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나는 마음을 돌려 해묵은 약속들의 먼지를 털어 주인공을 향해 신발을 신긴다. 우선 나 자신에게 철저히 남발했던 약속들을 제자리로 돌리려 한다. 체중조절, 말씀읽기, 기도 등...
한해동안 바쁘다는 나를 들이밀어 연초에 했던 약속을 연기, 또 연기하며 많은 타협을 해 온 나자신을 돌아보며, 내년에는 뻥 뚫린 치즈처럼 구멍 난 내 영혼의 모습이 비쳐지지 않도록 약속의 의미를 깊이 다져본다.
<데보라 임(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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