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바이올린 레슨이 끝나고 근처에 있는 마켓 ‘Trader Joe’s’에 들렀다. 당근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다 팔렸나? 설마 그렇게 흔한 당근이 없을까. 그때 딸이 노란색, 갈색, 자색 당근이 들어 있는 봉지를 집어서 준다. “엄마 이거 당근이라고 쓰여 있는데?” 나는 한참을 요리조리 살펴봤다. 낯선 색깔이다. 잠시 고민했지만, 당근이 필요하니 카트에 담았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 어제 산 당근을 꺼냈다. 당근은 원래 주황색 아닌가?
최근에는 농부들도 색 있는 작물을 많이 재배하고 소비자들도 찾는다고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고정의 색을 탈피해서 다양함을 추구한다. 다양한 색이 입맛을 돋운다. 게다가 이런 자연 색상의 채소들은 단순히 보기만 좋은 것이 아니라 영양도 풍부해서 실제로 우리의 질병 발생률도 감소시킨다. 다양한 색깔에는 다양하게 영양소가 들어있다. 안토시아닌 성분이 많은 보라색과 적색 채소, 베타카로틴 성분이 많은 노란색 채소, 리코펜 성분이 많은 초콜릿색 토마토. 나는 왜 한 번도 다양한 색의 당근을 사지 않았을까?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존재다. 내 눈에는 좌우 살필 것도 없이 그냥 ‘주황색 당근’으로 직행이었다.
내가 늘 접하는 것에 마음이 가고 손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런데 선입견이라는 것은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참 큰 것이다. 나는 내가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유연함이 아주 부족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에게는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가르치고 다양함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지만 실제로 나는 식탁에서조차 그런 다양함을 보여주기에 부족했다. 사소한 것 같아도 식탁의 문화와 교육은 무시 못 할 힘이 있다.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아시안 증오 범죄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지난해 3월 한인사 인종학이 포함된 인종학 모델 커리큘럼이 고등학교 졸업 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 인종학은 미국이 지금까지 성장해 온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에서 소수민족이 끼친 공헌에 대한 이해를 돕는 학문이다. 이제 캘리포니아주의 고등학교 학생들은 1903년 하와이 이민에서부터 도산 안창호 선생, 김영옥 대령, 새미 리 박사 등 한인 이민사의 역사를 공부하게 된다. 이런 결실을 이루게 된 데에는 많은 한인의 수고와 노력이 있었다. 칸트는 ‘인간은 교육받지 않으면 인간답지 않다’라고 말했다. ‘Make America Great Again’ 어떻게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가. 앞으로 교육을 통해 미국 안에 다양함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더 위대한 미국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미혜(한울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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