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는 창의적으로 공간을 찾는 기가 막힌 놀이다. 술래잡기하면서 아이들은 문 뒤쪽이나 장롱과 벽 사이 등 자기 몸의 크기와 모양을 상상하며 공간을 찾는다. 아이들은 ‘시간’만 있으면 ‘공간’을 찾아서 ‘장소’로 만든다. 아이들은 천재 건축가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주자.”
유현준 건축가의 책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다가 술래잡기에 대한 추억이 떠올라 잠시 책을 덮는다. 지난 여름에 도너레이크 펜션에 놀러 갔을 때, 우리 아이들과 같이 간 친구네 아이들이 함께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놀았다.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으레 한 번은 하고 넘어가는 놀이다. 새로운 숨을 공간을 찾아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다소 신기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이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식탁 밑으로 숨으며 모른 척해 달라는 눈짓을 보내거나 커튼 뒤에 숨어 있는 것을 보는 기분이란. 다 큰 척을 해도 아직 어린아이라는 생각에 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C. S. 루이스의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는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중에 루시가 옷장에 숨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녀의 마법에 빠져 영원히 겨울만 계속되는 나니아를 구하기 위해 네 남매가 함께하는 모험 이야기는 옷장 너머의 동심 세계로 나를 이끌었던 책이다. 지금은 실내장식의 한 부분으로 수납공간이 되었지만, 부모님 세대에서 ‘장’에 대한 개념은 우리 세대와는 달랐다. 혼수품 1호의 장롱은 당당히 안방의 가장 큰 공간을 차지했다. 실내 미끄럼틀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어린 딸들은 장롱 안에서 색동옷을 입은 두툼한 이불을 바닥에 내려서 푹신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 장롱처럼 아늑하고 숨기에 좋은 공간도 없다. 외출하신 엄마가 오실 때쯤 장롱에 숨어 있던 나는 엄마를 기다리다가 잠들어버린 적도 있다. 우리 집 아이들도 틈만 나면 이불로 집을 만들어 자기 영역 표시를 하며 놀았다.
주말에 아들이 방 배치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바꿔도 별거 없을 텐데…. 엄마의 머릿속에는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할까’부터 떠오른다. 동생과 누나의 손까지 빌려서 원하는 구조를 찾아 가구 배치도를 바꾸더니 생각지도 못한 괜찮은 구조가 나왔다. 손사래를 치며 말린 것이 민망했다.
10대 아이들은 인스타그램을 ‘린스타(진짜 계정, real Instagram account)’와 ‘핀스타(가짜 계정, fake Instagram account)’로 각각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통 자기 부모들이 인스타를 시작할 때, 핀스타가 시작된다고 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핀스타의 친구는 아니지만 린스타의 친구로서 만족한다. 자신의 방에 또 다른 ‘비밀의 방’을 만드는 아이들. 이것은 일종의 영역 표시다. “여기부터는 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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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한울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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