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 생일이라 LA에 있는 작은 아이만 빼고, 온 가족이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이제는 잊혀져 가는 생일인데도 많은 지인들이 생일 축하 메시지를 주셔서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남편과의 결혼생활과 함께 오래 전 잘 알고 지내는 장로님께서 보내주신 글이 떠올랐다.
황혼 이혼을 한 어느 노부부가 이혼 처리를 부탁했던 변호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주문한 통닭이 나오자 할아버지는 날개 부위를 찢어서 할머니에게 권했다. 그 모습을 본 변호사는 어쩌면 노부부가 다시 화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순간, 할머니가 기분이 아주 상한 표정으로 마구 화를 내며 “지난 30년간을 당신은 늘 그래 왔어. 당신은 내가 어떤 부위를 좋아하는지 이제껏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난 다리 부위를 좋아한단 말이야. 당신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날개 부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야. 나는 내가 먹고 싶은 부위를 꾹 참고 항상 당신에게 먼저 건네준 건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이혼하는 날까지” 하며 언짢아했다.
결국 화가 난 노부부는 서로 씩씩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각자의 집으로 가 버렸다. 할아버지는 자꾸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사과라도 해서 할머니의 마음을 풀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전화인 줄 알고 끊어 버렸다. 또다시 전화가 걸려 오자 아예 배터리를 빼버렸다.
다음날 아침 좀 너무한 것 같아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질 않았다. 자신이 전화를 안 받아서 할아버지가 삐졌나보다 생각하고 있을 때 낯선 전화가 걸려 왔다. “남편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집으로 달려갔다. 할아버지는 핸드폰을 꼭 잡고 죽어 있었다. 핸드폰에는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보내려고 찍어 둔 메시지가 있었다. “여보 미안해. 사랑해. 용서해줘.”
내게는 잊지 못할 글이었다. 부부간뿐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에게 무시당한 것 같아 분할 때가 많이 있다. 특히나 부부관계에서 누구나 자신이 다 참고 살았다고 말한다. 나 역시도 그래왔다. 하지만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보면 다투며 살 이유가 하나도 없다. 눈앞의 것만 보려 하는, 내 입장만 생각하는 우리들의 시각이 늘 관계를 힘들어지게 했던 것이다.
상대편의 보여지는 것만을 보려 하지 말고 시각을 바꾸어 그의 입장이 되어 보게 되면 완전히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내가 참아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나의 흠을 상대편이 참아준 것에 대해 감사할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이해이다. 남은 생을 서로 깊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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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메디케어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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