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아침처럼 울리는 전화벨 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1월에 암 수술받고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그분으로부터 전화가 올 때마다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걱정이 앞섰다. 이젠 1시간씩 걷기도 하고 식사도 정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참 기쁘네요. 옆에 있어준 가족분들께 통 크게 감사인사 한마디 쏘세요” 하니 “그럼그럼, 세상적인 것만 보고 살았는데, 이제 생명을 다시 가진 것이 가장 큰 감사네 그려” 하셨다.
하루종일 전화에 매달려 살다 보면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곤 한다. 오늘은 비바람이 들이치는 창가를 보며 잠시 차 한잔 하는 여유를 갖는다. 나만 겪는 일 같아도 다들 겪고 산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던가? 참으로 맞는 말인데, 어떨 때는 기쁨을 나누는 일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봐야 한다. 나는 기쁘지만 누군가에게는 좌절감이 더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아들 졸업을 며칠 앞두고 있을 때, 무슨 상을 받으러 학교로 오라고 했다. 가보니 상을 받는 아이들과 가족들만 있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을 주고 누구는 박수를 치는, 전에 내가 보던 졸업식과 달리, 상을 받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자리였다. 아이들 기를 죽이지 않는, 참으로 큰 배려인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내 아이가 성적이 월등하기를 바라고, 겸손을 가장해 가면서 자랑하고 싶어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우리들에게 국어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숨 3.3.”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지적하는 것만큼 치졸한 일은 없단다. 화가 많이 났을 때는 숨을 크게 3번만 들이쉬고 내쉬어봐. 하려고 했던 막말을 잊어버릴 거야. 누군가의 기를 죽이는 자랑을 하고 싶을 때도 숨을 크게 3번 들이쉬고 내쉬어봐. 내 유치한 모습이 떠올라 겸손하게 마음을 바꾸게 될 거야. 너희가 사회에 나가서도 교만하지 않고 참는, 누구나 좋아하는, 항상 필요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씀이었다.
참으로 모자라기 그지없는 인간이라 그런 것을 지키기 힘들었지만 내게는 평생 잊지 못할 말씀이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남을 배려하는 성숙함”이라는 걸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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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메디케어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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