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쓸모 있는 것에 집중해!” 영화광인 아들 새미에게 아빠 버트가 말한다. 컴퓨터 천재인 아빠는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새미의 귀엔 들리지 않는다. 그는 이미 이번 주말에 찍을 전쟁영화에 푹 빠져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파벨만스’의 한 장면이다. 버트의 말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허구 세계, 영화는 우리 일상에 어떤 쓸모가 있을까? 반세기 동안 영화를 만들어 온 거장 스필버그는 자신이 일평생 사랑해 온 영화의 쓸모를 우아하게 펼쳐 보여준다.
“슬퍼하는 엄마를 위해 영화를 만들어다오.” 외할머니가 돌아가셔 슬픔에 빠진 엄마를 위해 아빠는 새미에게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숫자로 세상을 이해하는 과학자 아빠도, 영화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쓸모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영화의 쓸모가 달콤하지만은 않다. 새미는 엄마를 위한 영화를 만들다가, 잔인한 진실을 마주한다. 엄마를 찍은 필름을 편집하다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 엄마의 비밀까지 알게 된다. 엄마의 비밀을 담은 영화는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리게 한다. 날카로운 영화의 쓸모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것이 있다. 엄마 미치는 요리를 하다가 아들 새미에게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다. 너무 이기적이지만, 이 집을 떠나 자신을 찾아야겠다고 한다. 그녀의 선택을 이제서야 모두 이해한다는 듯, 스필버그는 이 장면에서 ‘Mother and Son’이라는 따뜻한 음악을 들려준다. 자신에게 큰 상처였을 순간을 영화를 통해 충만한 기억으로 바꿔낸 것이다.
충돌하는 기차, 전갈, 미라, 전쟁에 빠져 있는 영화 속 새미를 보며 나의 아들이 떠올랐다. 올해 7살 된 나의 아들은 살아온 시간 절반 이상을 ‘몬스터’ 세상에 살고 있다. 세상 모든 악당들을 섭렵하며 ‘몬스터’에 빠져 있는 아들.
최근 아들 침대에 텐트를 설치해 줬다. 새미에게 충돌하는 기차를 카메라로 찍어보자고 한 엄마 미치처럼, 나 역시 아들이 텐트 안에서 자기만의 세상을 펼쳐 나가길 바란다. 믿어주는 부모가 뒤에 있다면 나의 아들도 성장하리라. 텐트 안에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앞으로 점점 아들 뒤에 서 있을 시간이 길어지겠구나 했다.
스필버그는 ‘파벨만스’를 통해 엄마를 ‘엄마’라는 대명사가 아니라, 한 인격으로 바라보게 된 듯하다. 빈 종이에 자기만의 세상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타인을 이해할 가능성을 높이는 일일 테다. 나의 아들도 단단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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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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