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이야기(11)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표현을 가끔 사용하지만, 나는 막상 한국에서 4일, 9일, 14일 이런 식으로 열리는 오일장(五日場)에 가 본 적이 ‘아직’ 없다. 며칠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야외시장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가기 시작했다.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고 이곳에 오래 살다 보니 지나가다 몇 군데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시장 중에서도 나는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이렇게 일주일에 세 번 열리는 페리 플라자 농부의 시장(Ferry Plaza Farmers’ Market)에 가끔 간다.
페리 빌딩 바로 앞에서 열리는 이 시장에서는 농부들이 직접 키운 채소와 과일을 판매한다. 꿀, 빵, 치즈, 꽃 등도 있고 따뜻한 음식과 커피도 있다. 페리 빌딩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가게들이 있어서 구경을 하다가 때로는 예쁜 비누 두 장이나 커피콩 한 봉지를 사기도 한다. 마음이 내키면 페리를 타고 인근 마을로 잠시 떠나 보기도 한다. 배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 관광객들... 나처럼 수십 년 살아 온 도시에서 매번 마치 이곳에 처음 온 사람처럼 이 도시를 즐기는 사람 등으로... 북적거리는 곳이다.
농부의 시장에 가면 나는 한국의 야외시장을 따라다녔다는 각설이를 떠올린다. 피눈물 나도록 고달픈 사람이 부르는 각설이 타령... 서러움을 더는 참을 수 없는 사람이 부르는 각설이 타령... 슬픈 사람이 마치 신나는 것처럼 큰 소리로 부르는 각설이 타령...
그리고,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중 ‘거리의 악사’! 꽁꽁 얼어붙은 땅에 맨발로 서서 손풍금을 연주하는 그의 접시는 늘 비어 있고, 그의 음악은 듣는 이 없으며, 동네 개들만 그를 향해 짖어 댄다... 그런데 슈베르트의 이 음악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
오늘 아침에 거둔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살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파 한 단과 레몬 두 개를 산다. 파의 향기와 레몬의 향기가 얼마나 다른지... 농부들이 키운 과일과 채소를 헝겊가방에 넣고 어깨에 그 향기와 무게를 느끼는 나에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싱싱한 먹거리를 충분히 살 수 있는 정도의 여유는 누리고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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