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되돌릴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나의 생각이었다.
그동안의 삶을 돌이켜보니 누군가가 나를 향해 던진 돌 위에 글을 새기고 무언가로 가득 채워 하나하나 쌓아가는 삶을 살아온것 같다.
죽음이란 돌 안에는 거절감으로 가득 채웠고, 연약함이란 돌 안에는 소망 없음을 채웠고, 늘 어른들에게 들었던 착함이란 돌 안에는 감정과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채우고 있었다. 상처란 모양으로 나에게 던져진 돌들을 하나하나 모아 쌓아가느라 뭐 그리도 열심을 내어 살아왔을까?
엄마와 전화 통화를 마친 후 남편이 손뼉을 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를 살린 사람이었네. 당신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아주 귀한 사람이었네…”라며 죽음을 생명이란 단어로 바꾸어 주는데, 내 삶을 가득 채웠던 그 어둡고 단단한 돌담 안으로 작은 빛이 서서히 비치면서, 내가 이렇게 귀한 사람이었나?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
단어 하나 바꿨을 뿐인데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엄마의 선택으로 첫 죽음의 문턱에 선 그때,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던 그 발길질이 엄마를 살리는 간절한 발길질이었고,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인지도 모른 채, 마냥 즐거워 손에 꽃을 들고 흥얼거리며 엄마를 따라갔던 3살 적 어린 나는, 아마도 그 길이 엄마와 함께가는 첫 나들이지 않았을까? 엄마와 함께함이 감사해서 엄마를 부르고 또 불렀던 그 작은 목소리가 엄마의 마음을 돌이키게 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외침이었다.
그저 내가 쌓았던 그 벽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힘없이 살아가고 있었던 내가, 이젠 일어나 그 벽 반대편에 서서 그 벽을 힘껏 밀어볼 힘이 생겼다. 그 단단했던 벽을 밀어 보니 그제야 보이는 돌 뒤편에 새겨진 글자들…
죽음이라 적힌 돌 뒤편엔 생명이라고 새겨져 있었고,
연약함이란 돌 뒤편엔 단단함이라고 새겨져 있었고,
쓸모없음이란 돌 뒤엔 존귀한 존재라고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방향을 바꾸니 그제야 보이는 내 삶의 진짜 모습들…
그 벽을 밀어 바닥에 넘어뜨린 후 그 위에 당당히 올라서 보니, 더 이상 내 삶을 가로막는 벽이 아닌 나를 든든히 세워 줄 반석이 되었다.
그 아팠던 돌들이 어찌나 귀하던지. 그 돌들이 하나하나 모여 나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초가 되어준 것이다.
내가 시작하지 않은 시작의 끝을 내련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해 보련다.
누군가가 던진 돌마저도 내 삶의 든든한 반석으로 채울 수 있는 삶, 그래서 그 반석의 힘으로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존귀한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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