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퍼즐을 하나하나 채우다 보면 사라져 버린 몇 개의 조각들 때문에 조금의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런대로 살아간다. 나에게는 어릴 적 엄마 품에서 지내지 못한 그 시절의 공간이 아마도 잃어버린 조각 중 하나일 것이다. 그 공간은 채울 수 없을 거라 여기며 살아왔었는데, 나이 50이 넘어 채우게 될 줄이야. 그것도 거센 폭풍 속에서 아주 조용히 그리고 슬며시 채워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작은 공간이 채워지고 나니 그동안 내가 놓쳤던 무언가를 찾은 듯했다.
내 삶은 그리 편안한 삶은 아니었다. 가시밭을 지나갈 때도 많았고, 진흙탕에 빠져 있을 때도 있었고, 거센 파도가 닥칠 때도 있었다. 분명 꽃길은 아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길에서 나는 꽃을 본 것 같다.
가시밭을 걸을 땐 여기저기 찔려 아픈 곳만 보느라 보지 못했다. 그런데 뾰족한 가시 사이를 뚫고 당당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뽐내며 꽃은 피어있었다.
진흙탕을 지날 때도 꽃은 있었다. 비록 진흙에 가려 색깔은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진흙이 튀기고 나면 잠시 쓰러졌다가 일어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며 응원해 주던 꽃.
거센 파도가 늘 덮이는 곳의 꽃은 땅에 바짝 붙어 바람이 불어도 끄떡 없이 피어 있었다. 파도 때문에 소금의 좋은 맛까지 가득 채워 가끔 내 인생에 맛을 더해주는 꽃이었다.
사막을 지날 때도,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걸어갈 때도, 갈라진 틈 사이를 뚫고 꽃은 피어있었다.
이 모든 꽃은 그 안에 조물주의 지혜를 가득 담고, 있어야 할 자리에 꿋꿋이 피어 있었다.
인제야 그 꽃들이 하나하나 생각이 난다. 분명히 꽃이 있었는데 이 길은 꽃길이 아니라고, 나는 언제쯤 꽃길을 걸어보냐고, 꽃길 한번 걸어보고 싶다며 나는 그동안 더 화려한 꽃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으며 살아오지 않았나?
매일 읽던 성경책을 보다 알게 된 것이 있다.
기쁨을 느낄 것인가? 기쁨을 누릴 것인가? (잠언 10:23)
내 모든 길에 있었던 꽃을 보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기쁨을 느끼는 것과 누리는 것의 차이였다.
기쁨을 느끼는 꽃길은 더 화려해야 하고 더 편안해야만 한다.
그러나 기쁨을 누리는 꽃길은 환경이나 꽃의 모양과 상관없이 걸음마다 지혜가 있을 것이고, 감사가 있을 것이다.
이젠 느낌을 넘어 내 인생의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싶다. 그리고 그 꽃들이 주는 지혜와 함께, 꽃길을 맘껏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
이 누림의 삶이 된다면 군데군데 비어있던 인생의 공간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채워지지 않을까?
만약 그 길에 꽃이 하나도 없다면?
내가 씨를 뿌리면 되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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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