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머신을 타고 대학 2학년으로 되돌아 본다.
국가의 부름에 배속 받은 미군 포사령부에 신참 카투사로 근무하던 해였다.
동료 넷이서 부대 뒷산 골짜기에 화전민 집을 방문차 외출에 나섰다. 힘찬 계곡 물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속에 처음 보는 머루, 다래를 따먹으며 한참을 걸어가니 숲 언덕에 방 두 칸짜리 초가집이 보였다. 노 부부와 아들 내외 네식구가 화전민(火田民)으로 살아 온지 30년이 넘었다고 했다.
화전민의 생활은 어렵고 쉽지 않을 것이다. 구릿빛 이마에 땀방울이 햇살에 반사된 퇴역장군의 훈장처럼 빛나 보였다. 뜻하지 않은 외지의 방문객에 적잖이 놀란 모습이었으나, 곧 떠나 살던 아들들이 고향집에 찾아온 듯 반가이 맞아주었다. 정갈하게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담소하고 있는데, 선임 상병으로부터 주 일병의 어머니가 면회오셨다는 전갈이 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어머니의 방문이었다.
중대장의 특별 허가로 어머니는 내 막사 침대에 앉아계셨다. 단정히 개어놓은 잠옷을 보시고는 “시킨대로 잘 하고 사는구나” 하시며 난생 처음 듣는 엄니(어머니)의 눈물 섞인 칭찬을 들었다.
정성스레 준비해온 송편, 어머니 손만두, 잡채, 굴파전 등으로 사병 휴게실에서 깜짝 파티가 되었다. 중대장이 지휘 통솔 중 외부인이 휴전선 근방 군 영내 출입허가를 받은 유일한 분이라고 했다.
“한국 어머니들의 용감하고 진한 모성애(Brave and strong mother's true love) 에 감탄했다”하며 환대해 주셨다. 특히 잡채가 참 맛있다고 극찬해주셨다.
중학 3학년까지 회초리를 드셨던 어머니, 함께 울기를 수없이 해 왔던 ‘울엄니' 의 사랑의 훈육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아버지가 되어 보니 너무나 소중한 자녀들. 모든 걸 다 주어도 더 주고 싶은 한없는 사랑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고 있다. 어른 공경하기, 양보하기, 거짓말 하지 않기, 청결하기, 대가 바라지 말고 어려운 사람 도와주기, 책임 완수하기, 이 여섯가지가 어머니의 훈육 지침이었다. ‘십대의 반항' 한번 못해 본 체 오늘날까지 내 삶의 자세를 교정해주신 ‘울엄니'의 가정교육이었다.
어머니의 인성교육은 무한대라는 생각을 한다. “어머니는 위대하다". 자식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며 고달파도 인내하신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따끔했던 ‘울엄니'의 회초리가 그리워진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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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남 포토맥 문학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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