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계층간 경제적 불평등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독립기념일에 발효한 ‘크고 아름다운 법안(Big Beautiful Bill)’이 불씨를 지폈다. 이 법안에는 트럼프 2기 핵심 공약을 반영하는 예산안과 세제 개편안이 망라돼 있다. 전임 정권에서는 생각할 수 없던 분야에 거액의 예산이 새로 배정되고, 건드리면 안 될 것 같던 예산이 뭉터기로 잘려 나가는가 하면, 다양한 감세안들도 들어 있다. 트럼프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종합 세트 같은 메가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처한 입장과 생각에 따라 찬반은 극명하게 갈린다. 불평등은 핵심 논란 중 하나다. 한시적이었던 개인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가 영구화된 반면, 생계 보조와 의료 지원 등 복지 예산은 뭉텅 잘렸다. 잘 사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지만, 최저 생계비 수준의 소득으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은 크게 훼손됐다.
소셜 시큐리티 은퇴 연금을 받고 있는 한인들은 얼마 전 사회보장국이 보낸 이메일을 받았을 것이다. 이 법안으로 인해 노인 수 백만명이 감세 효과를 누리게 됐다고 메일은 전한다. 연금 수령자의 90%가 연방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리라고 한다. 소셜 연금 외 연 3만2,000달러(부부 합산) 이상 소득이 있으면 세금 공제 대상이었던 은퇴 연금 중 85%가 세금을 내야 하는 소득으로 전환되는 규정 등이 개정됐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대부분 납세자들은 내년 초 세금 보고 때 회계사를 통해서나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될 지도 모른다. 법안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인데, 혜택은 ‘상대적으로 있는 노인들’의 몫이다.
부의 편중은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소득 상위 10%가 미국 전체 부의 70% 가까이를 갖고 있다. 국민의 절반인 하위 50%가 가진 부를 더해봐야 3% 정도. 팬데믹 후에도 미국 경제는 성장을 계속해 지금 기업 이익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 3,700만명은 연방 정부가 설정한 빈곤선 아래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33년까지 소득 상위 0.1%는 400억달러가 넘는 감세 혜택을 누리게 되는 반면, 하위 20%는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득 불균형은 지난 1970년부터 트럼프 때까지 50년이상 묵은 문제. 갈수록 계층간의 골은 깊어지고 있으나 어느 정권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트럼프 2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의 규모와 건강 상태는 흔히 국내총생산(GDP)이란 잣대로 진단한다. 하지만 GDP가 그 나라 국민의 경제 상황을 이야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경제 성장의 과실, 혜택에 누구에게 돌아가느냐는 것이다. GDP 중에서 근로계층에게 돌아가는 몫은 임금과 베니핏을 합한 금액이다. GDP를 말할 때 지출 보다 수입, 소득 총액을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2차 대전 후 지난 70년까지 근로자에게 돌아간 GDP의 비율은 12% 늘었다. 하지만 그후 최근까지는 오히려 14%가 줄었다고 매사추세츠 대학의 한 연구자는 최근 논문에서 밝혔다. 반대로 총매출에서 인건비와 재료비를 뺀 기업의 총 영업잉여(Gross Operating Surplus)는 70년까지는 18%가 줄어든 반면 그 후에는 34%가 늘었다. 기업과 근로계층이 반대되는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기업은 부자가 되는데, 국민은 가난해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근로 계층에게 돌아가야 할 GDP 몫이 지난 1970년을 기준으로 하면 2023년 한 해에만 1조7,000억달러가 더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발효된 ‘크고 아름다운 법안’.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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