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큰 요인은 언제나 경제다. 실업률, 금리, 주가가 선거판을 흔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치는 곧 국민의 생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단순한 사실을 외면할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128년전에 ‘아노미적 자살(Anomic Suicide)’이라는 개념으로 경제적 충격과 자살 사이의 관계를 설명했다. 경제적 불황은 단순히 돈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무너뜨려 삶의 끈을 놓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였던 제임스 길리건도 10여 년 전 날카롭게 경고했다.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의 저자이자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전문의 길리건의 분석은 충격적이다.
지난 100여 년간의 통계를 놓고 보면, 보수정당이 집권할 때마다 자살과 살인이 증가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복지 축소와 규제 완화, 불평등을 확대하는 정책이 사회적 약자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길리건은 그 메커니즘을 ‘굴욕감(Humiliation)’이라고 불렀다. 경제적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는 순간, 분노가 밖으로 향하면 살인이 되고, 안으로 향하면 자살이 된다.
결국 경제적으로 어려울때 보수적 정치가 국민에게 안긴 것은 자유나 기회가 아니라 죽음이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불평등은 더 심각해졌다. 청년층과 중년층에서 급증한 ‘절망의 죽음(Deaths of Despair)’은 길리건의 경고가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현실이었음을 보여준다.
한 사회가 안전망을 해체하고 무한 경쟁만을 종교처럼 떠받들 때, 남는 것은 약물 중독, 술,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위기를 더욱 잔혹하게 드러냈다. 사회적 유대가 붕괴된 곳에서 남은 것은 고립, 분노, 폭력이었다.
오늘의 미국 정치는 병리적 증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양당 대립은 이제 정책 논쟁이 아니라 증오와 적대의 전쟁이 됐다. 상대 세력을 협상의 대상이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바라보는 정치야말로 길리건이 경고한 사회적 분열의 극단이다.
이런 정치가 지속된다면, 미국은 내부로는 더 많은 자살을, 외부로는 더 거친 폭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길리건의 연구가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정치적 선택은 단순한 이념이나 성향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결정이다.
사회적 굴욕을 최소화하고 불평등을 줄이는 정치만이 사람을 살린다. 반대로 굴욕과 불평등을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정치인은 단순히 무능한 게 아니라, 냉정히 말해 국민을 죽이는 범죄자다.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약 1만 5천 년 전 부러졌다가 치유된 대퇴골(넓적다리뼈)을 고대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으로 보았다. 당시 원시시대에 다리가 부러지면 스스로 사냥하거나 도망칠 수 없어 죽음에 이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러진 뼈가 회복된 흔적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다친 사람을 돌봐주고 식량과 안전을 제공했음을 뜻하며, 이는 곧 공존과 협력, 공동체 돌봄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그런 정치인들을 선출할지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하는 정치인을 선택할지 미국의 시민들이 선택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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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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