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열 회고전-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우리에게 ‘물방울 화가’로 널리 알려진 김창열(1929-2021)은 말했다. “말없이 말하기 위해 찾은 형식이 물방울이었다”라고. 가장 절제된 조형어법이 그에겐 물방울이었다. 그의 물방울은 단순한 물질적 형상을 넘어 동아시아 철학 전통과 깊은 접점을 이루며 정신적 사유의 매개체가 되었다. 또한 그의 초현실적인 감각은 독자적인 예술 언어로 자리 잡았다. 그는 생전 약 50년간 끊임없는 물방울의 변주로 독창적 미감을 구축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번 회고전에는 1970년대 초기 작업부터 뉴욕 시기를 거쳐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말년까지 작가의 창작 여정을 120여 점 작품을 통해 되짚어 본다. 캔버스에 맺힌 투명한 물방울, 그 시작은 총탄 자국이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으로부터 살아남아 새로운 예술과 구원을 갈망했던 청년의 눈물이었다. 시대의 비극이 예술로 이어졌다. 전시는 평면의 회화가 아니라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냈고 그 속에서 관람자는 물방울의 표면 아래 감춰진 시간과 언어, 존재의 흔적을 유추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 회고전은 김창열이라는 예술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재정립하는 기회이자, 그의 삶과 예술이 지닌 고유한 미학과 정서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왼쪽)무제_1969_캔버스에 유화_20.5×20.7cm (오른쪽)구성_1970_캔버스에 아크릴릭_150x150cm
전시는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의 4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이 연출은 김창열의 회화가 비움에 대한 단순한 재현의 결과물이 아니라 보는 행위 자체를 비우는 수행적 체험임을 드러낸다.
전시의 중심부에서 관람객은 그의 <물방울 회화>들과 만난다. 캔버스 위에 정제된 물방울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그 공간은 회화라기보다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큐레이터는 작품 사이의 간격을 넉넉히 두어 관람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이 느려지도록 유도했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물방울의 표면에 반사되는 미묘한 빛의 떨림과 그 이면의 공허함을 함께 본다.
전시의 후반부는 작가의 서예적 실험과 물과 글자의 결합 시도가 전개되며 화면 위에서 문자는 물에 젖어 스며들며 사라진다. 물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의 요소가 아니라 기억을 지우는 도구이자 그 흔적을 남기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이 섹션은 어두운 조명으로 물방울 회화의 투명함이 아니라 ‘흐릿함’과 ‘침잠’을 강조했다. 그것은 노년의 김창열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응시하듯 생의 마지막에서 사라짐을 시각화한 듯 하다.
이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작품 배치를 연대기적 배열 대신 정서적 흐름과 사유의 깊이에 따라 정했다. 그를 단순한 ‘물방울의 화가’가 아니라, 삶과 죽음, 언어와 침묵 사이를 왕복한 철학적 존재로 바라보게 한다. 이런 구성은 관람자에게 작가가 평생 집요하게 붙잡았던 ‘투명함’의 의미를 해석하게 만든다.
조용히 고인 물방울 하나에도 무수한 빛이 반사되듯, 김창열의 세계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관람자의 내면에서 새로이 번져나간다. 이번 회고전은 그렇게 화가의 투명한 사유가 남긴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진행된다.

➊ 물방울_2006_캔버스에 아크릴릭_89x117cm ➋ 물방울_1986_캔버스에 아크릴릭 유화 물감_73×50cm ➌ 회귀_2014_캔버스에 유채 _162 x112 cm8 ➍ 물방울_acrylic and watercolor on newspaper _50×33.3cm_1986 ➎ 제사_1966_캔버스에 유화 물감_162×137cm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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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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