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구스타보 두다멜이 LA필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6세라는 젊은 나이도 그렇지만, 지휘 콩쿨 우승 3년만의 성과였고, 베네수엘라라는 국적은 물론 출신도 경력도 너무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은 여전히 거장들의 무대였다. 빈필과 베를린필은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사이먼 래틀이 계보를 잇고 있었고, 시카고 심포니에는 리카르도 무티가 예정되어 있었으며, 뉴욕필을 비롯해 이스라엘필 역시 주빈 메타와 같은 중견 거장 지휘자들이 카라얀과 번스타인 이후의 시대를 이끌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계는 여전히 경험과 경력이 중요했고, 권위와 전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계였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그 세계에서 두다멜을 차기 음악감독으로 지명했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프라이즈였고, 그 파격이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신호처럼 보였다. 두다멜의 취임은 단순한 인사 결정이 아니라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다음 시대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둘러싼 오래된 관성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두다멜은 20년 가까운 LA필과의 역사를 이번 시즌으로 마무리하고 뉴욕으로 떠난다. 그렇다면 지금 LA필은 그 후임으로 누구를 찾고 있을까? 최근 할리웃보울과 디즈니홀 무대에 연이어 등장하는 젊은 지휘자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또 한 번 역사를 바꿀, 긴 음악감독 오디션을 보는 기분이 든다.
올 여름의 할리웃보울에서는 이미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1996년생의 클라우스 매켈라, 2000년생의 타르모 펠토코스키 같은 이름들이 눈에 띄었고, 디즈니홀에서도 두다멜 펠로우십 출신인 티안이 루, 강렬한 에너지의 엘림 찬, 미국과 유럽을 넘나들며 급부상 중인 조나단 헤이워드 같은 젊은 지휘자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이들의 등장에는 분명 단순한 초청 이상의 의도가 분명히 있다. 각기 다른 출신과 해석, 그리고 음악적 세계를 가진 지휘자들 중 누가 가장 LA필의 사운드와 호흡이 잘 맞는지를 지켜보는 것 또한 LA필 연주회의 즐거움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디즈니홀에서 만난 로베르토 곤살레스 몬하스의 지휘는 또 다른 색채를 보여주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인 그는 이미 유럽 무대에서 활동 폭을 넓히며 현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이번에 그는 에니그마 변주곡을 지휘했다. 작곡가 엘가는 영국의 국민 작곡가이자 후기 낭만주의의 상징이다.
스페인 출신인 몬하스와 엘가는 국적이나 시대 등 배경만 놓고 보면 유럽인이라는 점 외엔 별로 공통점이 없어 보였지만, 그의 연주를 들으니 엘가와 의외의 접점을 찾게 되었다. 과장하지 않고, 오차 없이 지어진 설계도처럼, 절제와 감정이 균형을 이룬다는 점이다. 작품과 해석이 한 사람인 듯 조화로웠다.
개인적으로 LA필은 관악에 비해 스트링이 약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날은 마치 유럽의 오케스트라와 같은 음색이 들렸다. 우아한 고백과도 같은 연주였다. 섬세한 디테일과 균형을 잃지 않는 지휘자로 보였고, LA필과의 호흡도 여유롭고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LA필이 어떤 새로운 리더를 찾는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차분한 유럽형 지휘 스타일’도 하나의 가능성으로 충분히 고려되고 있다고 본다.
연주회 내내 LA필의 다음 리더는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계속 증폭되어 갔다. 안정적이고 검증된 유럽 출신의 지휘자가 다시 오게 될까, 아니면 할리웃보울과 디즈니홀에서 이미 존재감을 보였던 젊은 지휘자들, 특히 여성 지휘자들이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까? 아시아계 지휘자들의 약진도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데 혹시? 혹은 어쩌면 두다멜이 그랬던 것처럼 예상 밖의 장소에서 전혀 새로운 얼굴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꿈의 도시 LA에서 출신, 배경, 경력 등 기존의 고정 관념을 깨고 드라마틱하게 등장하여 새로운 음악 세계를 선사할 다음 주인공은 누가 될지 무척 기대된다. LA필은 최근 단원들의 세대교체도 눈에 띄고 세계 초연 무대도 자주 올린다. 브랜드에 맞는 깊이 있고 책임감 있는 운영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상업적 이익만 따지지 않아도 되는 경영 구조가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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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 / YASMA7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