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바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Sea·1947) ★★★★★ (5개 만점)
▶ 독일 장교 베르너 폰 에브레낙이 프랑스 문화 사랑을 시 읊조리듯
▶ 주인공인 집 주인과 젊은 질녀는 나치 침략에 저항 ‘침묵의 웅변’
‘사무라이’와 ‘붉은 서클’과 ‘고발자’등 여러 편의 갱스터 범죄영화를 만든 프랑스의 장-피에르 멜빌 감독의 데뷔작으로 시적 아름다움과 슬픔으로 가득한 영화다. 저널리스트였던 장 브뤼에르가 베르코르라는 필명으로 나치 점령하의 파리 교외에 살 때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1941년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을 관할하는 음악가 출신의 이상적이요 지적인 독일 장교 베르너 폰 에브레낙과 그가 묵고 있는 집의 주인인 초로의 남자와 그의 젊은 질녀가 주인공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폰 에브레낙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은 폰 에브레낙은 매일 저녁 노신사와 그의 질녀가 앉아있는 거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벽난로 앞에 서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면서 독백을 시작한다. 자신의 청춘과 음악과 책과 프랑스 문화에 대한 사랑을 마치 시를 읊조리듯 얘기한다.
그런 그를 노신사와 질녀는 각기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두 사람은 침묵으로 나치의 침략에 대해 저항하는데 방안을 가득 메운 바다의 무게 같은 침묵이 벽시계의 움직이는 추 소리에 의해 해심을 더욱 파고든다. 폰 에브레낙의 독백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이 독일의 음악 자랑이다.그는 “프랑스하면 몽테뉴, 라신느, 몰리에르 그리고 위고 같은 문인들로 유명하지만 독일하면 음악가들이지요. 바흐,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바그너.” 그리고 그는 방에 있는 하모니움으로 바흐의 프렐류드와 퓨그 제8번을 치면서 “이것은 인간을 초월한 음악이지요. 신의 존재처럼 날 채우는 음악입니다”라며 바흐를 찬양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폰 에르네락을 침묵으로 거부하고 그를 마치 귀신이나 되듯 취급하던 노신사와 질녀의 가슴에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폰 에르네락과 질녀 간에 애매모호한 감정이 아기 눈 뜨듯 한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의 문화적 융합이라는 자신의 이상이 나치 하에서는 허상임을 깨달은 폰 에르네락이 자원해서 러시아 전선으로 떠나기 전날 밤 질녀에게 “아듀”하면서 작별을 고한다. 이에 비로소 질녀도 “아듀”하고 처음으로 말문을 연다.
이 영화는 멜빌이 흑백 화면 속에 가둔 침묵의 웅변과도 같은 것으로 역시 이 영화로 데뷔한 촬영감독 앙리 드카에의 엄격한 촬영이 아름답다. 폰 에르네락 역의 하워드 버논은 언어로 연기를 하는 셈인데 노신사 역의 장-마리 로뱅과 질녀 역의 니콜 스테판은 무표정의 연기다. 스테판의 깨끗한 옆모습과 호수처럼 맑은 눈이 버논의 독백에 침묵으로 반향을 일으키면서 소리와 무성의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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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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