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방준재(미주한인청소년재단 회장)
갑작스레 눈앞에 한줄기 샛빨간 섬광이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해질 무렵 휘영청 뜬 보름달을 가로지르며 수직상승할 때 일본 춘추전국시대의 최고 검객 ‘미야모도 무사시’가 베었다던 지는 해를 연상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일직선으로 상승하던 빨간 빛줄기는 ‘알라딘의 요술항아리’에서 꼬불꼬불 피어오르는 빨간 연기로 변하더니 머리에 꼬깔모자를 쓴 듯한 옅은 회색 구름과 하늘에 빨강과 회색으로 잘 대조된 한 폭의 화려한 수채화를 그려놓고 있었다.
짧은 플로리다 여행을 끝내고 허전함을 달래며 뉴욕으로 돌아오는 차중에서 목격한 그 광경은 ‘케이프 캐나버럴’에서 쏘아올린 우주선일 거라 단정하고 있었다.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휴가객들은 얼빠진듯 차도를 막고 서있다가 마침내 차 안의 우리 일행을 의식한 듯 겸연쩍은 미소를 보내고 우리도 그들에게 환한 미소와 손 흔들어 순간적으로 일어난 그 장관에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What a scene’ 하듯이.
그때 우리는 인종을 초월한 화합의 순간이었고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지구를 넘어 우주공간이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감동으로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소련의 ‘스푸트닉’ 1호 발사로 시작된 미소간의 우주경쟁은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으나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선점은 미국의 위상을 되찾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를 하나로 묶어 숨을 죽인 채 가슴졸이며 그 순간을 놓칠세라 텔레비전 화면에 얼어붙은 듯 한 것이 1969년.
지구상의 조그마한 나라, 한국 어느 대학 구내다방에서도 달 착륙 순간이 화면에 비쳤을 때 우리들 일인양 모두가 벌떡 일어나 환호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월트 크롱카이트’의 해설처럼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은 43세의 젊은 나이에 대통령에 당선된 후 비명에 죽어간 ‘케네디’ 대통령을 또 한번 애도하고 있었다. 미국의 자존심과 영광을 부르짖으며 우주 경쟁이 시작되었다고 선언하던 그를.
플로리다의 초저녁 하늘을 가로지르며 치솟던 우주선은 우주선 자체라기 보다 무한대로 뻗는 미국의 자존심으로 느꼈고 지난 미 대선의 마지막 투개표 과정의 쟁점지였지만 하늘을 비상하던 그 광경에 애석하게 패배한 민주당원도, 드디어 이겼다는 공화당원도 존재하지 않는 자신들이 미국인이라는 사실 하나만 머리에 각인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떠나온 고국이 아프도록 가슴에 다가오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날이면 날마다 정쟁에 시달리고 우롱당하며 내일이 보이지 않는 불안의 세월을 맞고 보내는 나의 고국인들에게 저 하늘을 비상하는 자존심을 심어주고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는 영도자는 없는가, 애석한 마음 가득 차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와장창 부서질 듯 하던 와중에서도 미국이라는 국가를 우위하는 정치인은 없다고 생각하며 제 자리로 찾아가는 이 나라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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