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 <옥세철 논설실장>
9.11 테러참사 이후 ‘공포지수’(fear index)란 말이 한동안 유행했다. 모든 걸 최악의 시나리오와 상정해 보는 버릇과 관련해 불거진 현상이다.
사상 최악의 테러가 발생했다. 탄저균 소동이 벌어졌다. 테러참사만 해도 쇼크인데 생화학 테러까지 발생했으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불안감이 높아진 건 당연하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도 ‘혹시…’ 하는 심정으로 지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것.
공포지수가 높아지면서 한가지 ‘미국적 현상’도 소멸했다. 설레브리티(celebrity)에 대한 관심이 낮아진 것이다. ‘저명 인사’라면 사족을 못쓰는 게 미국의 풍토다. 그러므로 ‘설레브리티와 관련된 뉴스는 무조건 팔린다’가 정설이었다. 그 정설이 깨진 것이다.
공포지수 상승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죽느냐, 사느냐, 어떻게 먹고사느냐 등의 문제로 연예인이니 어쩌니에 관심을 쏟을 겨를이 없어진 까닭이다.
"각 사무실에서는 일찌감치 업무를 접고 경기를 관전했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는 행인들이 대형 전광판을 경기를 지켜본 뒤 애국가를 부르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잉글랜드 팀과의 경기에서 1대1로 비긴 후 한국 신문이 전한 서울 거리의 풍경이다. 서울역등 대형 멀티비전이 설치된 곳에는 경기시작 두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몰렸다고 한다. 세종회관 앞에는 2만5,000여명 몰려 광화문 지하보도 계단입구까지 가득 메웠다고 한다.
또 이런 보도도 나오고 있다. ‘한국민 4명중 3명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예상하고 있다’-.
4,000만이 아예 감동을 해버린 것 같다. 마치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것 같이. 왜 이처럼 ‘감동지수’가 부쩍 높아지고 있을까. 날로 높아가고 있는 ‘환멸지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사방을 돌아보아야 짜증밖에 나는 게 없다. 거기다가 무슨 게이트니, ‘왕자의 난’이니 온갖 비리로 지고 새는 정치, 정치는 공해 그 자체다.
그러니 시종일관 최선을 다해 뛰는 선수들. 그 움직임이 가져온 자그마한 최선의 결과에도 4,000만이 그만 감격해 버린 게 아닐까.
그건 그런데 이러다가 축구는 기가 막히게 잘하고 정치는 엉망진창인 남미 스타일 나라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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