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아들을 둔 40대 중반의 L씨는 한국이 폴란드를 꺾은 뒤, 한국-미국의 경기에서 어느 팀을 응원할 것인지 아들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은 이 질문에 “나는 미국인”이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며 미국을 응원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한다.
‘물’과 ‘피’를 적당히 섞은 듯한 반응도 있다. 40대 초반인 P씨의 미국태생 남매는 “어느 팀을 더 좋아하냐”는 질문에 “모르겠다”는 외교적 발언으로 ‘민감한’ 부분을 피해갔다고 한다.
그래도 대세는 “한국 편”이다. 월드컵 16강 티켓 선점을 노린 한국과 미국의 일전을 앞두고 시민권을 갖고 있는 한인 중 대다수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40대 초반의 P씨는 ‘심정적 조국’과 ‘법률적 내 나라’ 사이에서 조금 고민했지만 결국 ‘뿌리’로 돌아갔다. P씨는 “다소 갈등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이 이겨야 좋을 것 같다”고 한다. 미국태생인데도 유별나게 한국 쪽으로 기우는 경우도 있다. 중학생인 12세 K군은 한국이 폴란드를 이기자 손가락으로 V자 표시를 하며 “우리가 해냈다”고 자랑스러워했으며 미국과의 경기에서도 당연히 한국을 응원할 것이라고 한다.
시민권자의 지지 패턴은 단순히 ‘물’과 ‘피’의 관점에 국한되지 않는다. 축구에 대한 국민의 열의를 척도로 삼는 팬도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에 온 20대 후반의 직장여성 W씨는 “한국생활보다 미국생활이 더 오래됐지만 축구로 열광하는 한국을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축구를 하나의 순수한 스포츠로서 보며 그저 평범한 팬으로서 한국 팀을 응원한다는 사람도 있다. 30대 중반의 B씨는 “LA에 살면서 뉴욕 양키즈 야구팀을 좋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한국팀이 그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여운을 남긴다.
국력을 기준으로 약자와 강자의 개념으로 응원할 팀을 고르는 한인도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대학생 S씨는 “미국이 골을 넣으면 박수를 칠 것이고 한국이 골을 넣으면 함성을 지를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한국이 미국에 뒤지니 축구에서만큼은 한국을 응원하고 싶다고 했다. 7세에 미국에 와 올해 29세로 한인봉사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C씨는 “한국과 미국이 모두 16강에 올라가길 바라지만 만일 16강에서 붙게 되면, 한국이 이기길 바란다”고 했다.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스웨덴 등 세계 강호들이 모여 ‘죽음의 조’로 불리는 F조에 이어 ‘또 다른 죽음의 조’로 부각된 D조의 한국-미국 경기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을 미 시민권자 한인들은 한국팀을 응원하면서 뜨거운 ‘그 무엇’을 뭉클하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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