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언니로부터 일 끝날 무렵 달구경 가자고 연락이 왔다. 드라이브를 하자는 거겠거니 하고 따라 나섰더니 어느 칼리지 내에 큰 홀을 빌려 행사를 갖는 일본인들의 ‘쯔끼미 노 카이’ 말 그대로 ‘달구경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홀 안은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자들과 정장차림의 일본 남자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처음엔 우리 한국인들의 모임도 아닌 남의 나라의 문화 풍습을 엿보는 것 같아 별로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앉아 있었다.
홀 맨 앞에 ‘A Traditional Moon Viewing Event’라고 씌어져 있었다. 행사를 지켜보면서 가슴 한켠에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이건 남의 나라가 아닌 우리 한국인의 축제와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고향 시골집에서 할머님께서 들려 주셨던 달 속에서 옥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이야기, 달에 얽힌 전설 속 이야기들을 노래 혹은 춤으로 표현하는 전통문화 계승을 보며 참으로 오랫동안 잊고 있던 한국의 문화 유산을 각색되고 변질된 모습으로 남의 나라에서 만나고 있다는 부러움과 낭패감이 들었다.
구슬픈 피리 소리와 퉁소 소리, 부채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고유의 차와 전통 술, 갖가지 다과와 떡을 먹고 즐기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이곳 하와이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아름의 갈대와 도라지 꽃, 한국의 들판에서 흔하게 보아왔던 이름 모를 열매가 달린 나뭇가지와 들국화랑 한데 어울려 만든 꽃꽂이 또한 진한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흥이 무르익어 가자 붓과 화선지가 나눠지고 5:7:5 조로 달을 주제로 시조를 지어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 다음은 차례로 밖에 나가 달을 만나서 조그만 술잔에 사께를 조금씩 따라 들고서 달빛을 담아 마시며 각자의 소원을 달님에게 비는 순서였다. 맑고 높은 밤 하늘에 구름을 비껴 떠 있는 달님을 보며 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를 외고 있었다.
옆에서 한숨 섞인 언니의 푸념이 나왔다. 30년이 넘게 이민생활을 해온 언니는 요즘 한인 이민사회 활동에 동분서주 하며 많은 문제점과 고충을 느끼고 있던 터라 질서 정연하면서도 짙은 여운을 풍기는 이런 모임이 많이 부러운것 같다.
1년에 한번씩 열리는 한인 운동회만 해도 참석자가 많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이고 세대를 잇는 이민 사회의 전통 계승 운운하면서도 뭣하나 제대로 갖추질 못하고 의견만 분분하며 서로들 불만만 토로하고… 각 나라 전통 춤과 예절 문화를 배우는 목적으로 하는 단체 프로그램이 있는데 유독 한국인 교실만 텅 비어 있다고 언니는 볼멘 소리를 했다.
아마도 우린 이민 역사가 짧아서 그럴 거라고 위로를 했다. 사탕수수 농장에 취업 이민으로 시작하여 노동 임금 일부를 떼어서 독립 자금을 모아 보낸 훌륭한 우리의 선조 들이 있었지 않느냐고. 올해로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로서는 이만큼 온 것도 장하지 않느냐고. 먹고살기 바빠서 일 거라고. 우리도 그런 날이 올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나 역시도 비어 오는 가슴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겪어 본 많은 일본인들은(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개인의 이익보다는 일본인의 자존심을 먼저 생각하는 걸 보았다. 조국을 떠나 3대 4대에 걸쳐 뿌리를 내려오는 저들의 민족성과 자부심이 이런 문화 계승을 통해 내려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미숙/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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