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선언서와 함께 미국을 떠받들고 있는 두 기둥의 하나인 연방 헌법은 세계 역사상 가장 짧으면서 가장 오래된 헌법이다. 이 헌법 원본은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 문서 보관소에 소장돼 있다. 낮에는 1페이지와 4페이지만 방탄 유리로 된 진열장에 놓여졌다 밤에는 5톤 짜리 문안에 있는 보관실로 옮겨진다. 핵전쟁이 일어나도 끄덕 없게 돼 있다. 헌법 전문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1년에 헌법 제정일인 9월 17일 딱 하루뿐이다.
미국 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고치기 힘든 법이다. 헌법을 수정하려면 연방 상 하원 2/3의 동의와 50개 주 중 3/4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제헌 의회를 소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그러려면 주 의회 2/3의 지지가 있어야 하고 제헌 의회 참석자 3/4의 동의가 있어야 통과된다. 지난 200여 년 간 수천 건의 수정안이 제안됐지만 통과된 것은 27건뿐이다. 모두 미국인들의 헌법에 대한 외경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연방 헌법보다 더 고치기 어려운 법규가 있다. LA 한인회 정관이 그것이다. 14일 LA 법원은 “한인회 회원인 한인 2/3가 찬성하지 않은 정관 개정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따르면 LA 한인 수를 줄잡아 30만으로 칠 경우 20만 명이 한데 모여 정관 개정을 결의하기 전까지는 한 자도 고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20만의 한인이 한인회 정관을 고치기 위해 모이는 일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오지 않을 것이다.
이번 판결은 판사의 법 해석이 잘못이라기보다는 현 한인회의 존재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가를 말해준다. 지금 한인회는 30년 전 LA한인 인구가 수천에서 수만이던 시절 몇몇 타운 유지가 한인 사회 전체를 대표하던 것처럼 행세하며 만든 것이다.
역대 한인회장 치고 전체 한인 인구 5% 이상 지지를 얻어 당선된 인물은 한 명도 없다. 그렇게 해서 회장이 된 후에는 거의 대다수가 한국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국영 기업체 한직이라도 한자리 얻거나 국회의원 공천권을 따내 낙선한 후 주저앉거나 다시 LA로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민 초창기 한인 단체가 별로 없던 시절 취업 알선이나 각종 상담 등 이민 정착을 돕는 봉사기관으로서 한인회는 존재 의의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정에서 의료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 전문 봉사 단체가 있는 지금 허울 좋은 대표성을 내걸고 도깨비 같은 인사들의 한국 정치판 징검다리 역할이나 하는 한인회가 정말 필요한 지 의아스럽다.
이번 판결로 한인회 정관을 고쳐 내부적으로 개혁하는 길은 사실상 봉쇄됐다. 2000년대와 이민 100주년을 맞은 지금 한인회를 언제까지나 구태의연하게 끌고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한인 사회의 뜻 있는 인사들은 한번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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