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 극복 테니스 스타, 사회·정치계 족적 뚜렷
스포츠보다 학업강조… 수혈로 AIDS 감염사망
제임스 블레이크는 뉴욕 할렘 테니스센터에서 어린이들에게 테니스 클리닉을 연다. 블레이크가 어렸을 때 흑인 테니스스타 아더 애시는 이 목재건물에서 블레이크처럼 어린이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쳤다.
안타깝게도 블레이크는 애시를 만난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또한 애시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애시에 대해 별로 알지 못했다. 애시는 10년 전인 1993년 2월 6일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블레이크의 나이는 13세였다.
“애시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를 더 존경하게 된다. 그는 세상을 변화시켰다. 애시가 세운 업적은 테니스 선수로써의 명성을 능가한다. 내가 이해하는 애시의 교훈은 테니스는 물론 학업도 열심히 추구해서 다방면에 능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어린이들에게 이같은 교훈을 전하고 싶다”
지난 주말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데이비스컵 대회에 미국 대표로 참가한 블레이크는 출발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애시의 유업은 꾸준히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애시가 시작한 교육, 보건, 주니어 테니스, AIDS 퇴치 프로그램에는 그의 정신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할렘 센터 입구에 있는 벽에는 애시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 있는 정원은 그를 추모, 만들어진 것이다. 애시의 고향인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는 왼손에 테니스 라켓을, 그리고 오른 손에 두 권의 책을 높이 들고 있는 그의 동상이 있다.
“나는 아더가 단순하게 초상화로 남는다던지 혹은 에이즈로 숨진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더는 재능이 있었고 그것을 사용했다. 그가 수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아더는 아인슈타인도 천재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게 했다. 그것이 바로 특별한 것이다”
애시의 미망인인 사진작가 진 모토사미 애시는 강조한다.
U.S.오픈과 호주 오픈에서 우승한 애시는 49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항상 품위를 잃지 않았던 애시는 스포츠의 차원을 넘어 정치 및 사회 이슈를 역설한 몇 안되는 스포츠 스타의 한 사람이다.
애시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부에서 태어나 백인일색의 테니스 세계의 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AIDS보다도 피부색이 더 큰 장애가 됐다고 말했었다.
애시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반대했고 미국정부의 아이티 난민 수용 거부를 비난했다. 애시는 심장수술을 받다가 수혈로 AIDS에 감영된 후 죽기 전까지 이 불치의 병 퇴치에 앞장섰다.
“사람들은 타이거 우즈같은 스포츠 스타들이 사회, 정치 이슈에 대해 미온적이라고 비난한다. 아더도 생전에 비난을 받았다. 사람들은 아더가 60년대 투쟁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랬다. 하지만 아더는 자신의 스포츠에서 최고가 되면 그 위치에서 보다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더는 선수들이 스포츠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위대한 것을 위해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모토사미 애시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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