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를 도와 촉한(蜀漢)을 세운 제갈양은 재야시절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자주 견주었다고 한다. 관중은 제환공을 도와 패업을 이룬 대정치인이다. 악의는 전국시대 적국의 70개성을 파죽지세로 함락시킨 전술의 귀재다.
제갈양이 이들을 자신에 자주 비교한 건 이들을 일종의 정치적 사표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훗날 보여준 그의 경륜은 이 두 인물의 업적과 어딘가 흡사점이 많다.
김대중 대통령(DJ)은 어떤 정치인을 가장 닮고 싶어 했을까.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브란트는 나치시절 반독재 투쟁을 했다. 또 전후 처음으로 좌파 정치인으로서 정권을 잡았다. 한국에서의 DJ의 경력과 비슷하다.
브란트는 또 당시 워싱턴의 의혹에 찬 시선에도 불구하고 신동방정책을 소신껏 밀고 나갔다. 그 결과 동·서독간 화해를 이루었고 노벨 평화상도 받았다. 신동방정책이 독일통일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DJ의 햇볕정책은 브란트의 신동방정책을 닮았다. 그런데 내용에서는 차이가 많다. 브란트는 일방적 퍼주기가 아니라 철저한 상호주의에 입각해 추진했다.
투명성에서도 그렇다. 야당과 국민과의 협의를 거쳐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동방정책을 밀고 나갔다. 그러므로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책은 계속 추진됐다.
‘DJ는 체임벌린으로 비교될 수도 있고, 닉슨으로 비교될 수도 있다’-’ 한 미언론인의 주장이다.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는 점에서 핑퐁외교로 중국과 화해한 닉슨에 비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뇌물로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한 것으로 판명되면 평가는 달라진다는 말이다. 히틀러에게 유화정책을 펴다 전쟁을 불러 일으킨 영국의 체임벌린에 비교 될 수 있다는 것.
그럴듯한 비교다. 그런데 그 비교 자체가 무리 같다. 도덕성이랄까, 고결성에서 너무 격이 달라서다.
브란트와의 비교는 더욱 그렇다. 브란트는 사후는 물론이고 생전에도 이미 정파를 초월해 독일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동·서독 화해는 물론이고 세계 빈부의 차이 극복을 위해 사심없이 헌신해온 그였기 때문이다.
DJ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DJ 정권 5년이 끝나는 시점에서 새삼 제기되는 질문이다.
<옥세철 논설실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