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26일 할리웃 보울에서 2만 가까운 한인이 모인 가운데 이민 100주년 기념 음악 대축제가 열렸다.” 신문 문장으로 정리하면 아주 간단하다.
조금 더 자세히 밝히면 이렇다. 출연진만 200여명에 이른다. 관객은 어린이, 젊은이들, 중년층,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이 망라됐다. 미주 한인 사상 최대 관중이다.
이렇게 써놓아도 밋밋하기 짝이 없다. 통계수치만 나열한 것 같아서다. 그런데 현장에서의 감은 그게 아니다. 그러니 뭐랄까…. 그렇다. 그건 하나의 가능성이 확인된 데에서 오는 짜릿함이다. 그 느낌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이게… 전부 한인입니까.” 하나 같이 말을 미처 끝내지 못한다. ‘나 자신’이 분명 한인이다. 가족과 함께 피크닉을 겸해 음악제에 참석했다.
그렇지만 1만8.000여 객석을 꽉 메우고도 입장을 못한 한인들, 또 하일랜드 길을 따라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룬 한인들의 모습이 일종의 ‘충격과 경외감’으로 전해져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관광버스들이 도착해 사람들을 꾸역꾸역 토해 놓는다. 역시 모두 한인이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 한 입이 된다. “아니, 이게… 전부 한인입니까.”
“대∼한민국”이란 구호가 엇박자로 울려 펴지면서 사람들은 흔연히 하나가 된다. 10대들은 좋아서 깡충깡충 뛴다. 중년들은 애써 점잖음을 유지하면서도 자못 흥분과 충격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노인들은 너무나 대견스럽다는 표정이다.
너와 나, 앞집 김씨네와 뒷집 이씨네가 하나 둘씩 손에 손을 잡고 참석해 이룬 잔치 한마당이다. 할리웃 보울이라는 세팅을 배경으로 이렇게 이루어진 이 잔치의 광경에 스스로가 놀라고 대견해 하는 분위기다. “아… 이게 다 한인이구나”하는 감탄과 함께.
무엇이 이토록 많은 한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을까. 한국서 온 연예인들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10대들의 우상인 정상급 가수들이 거의 모두 출연한 음악제였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문이 있다. 그러면, 뭘까. 그렇다, 그건 ‘붉은 물결’의 연장일 수도 있다.
월드컵 때 흔연히 하나가 돼 이룩한 참여의 다이내미즘. 그 역동의 참여 문화가 이민 100주년을 기점으로 이 미주 땅 한인 사회에서도 공동 체험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보물이 사장돼 있는 걸 몰랐다.” 1만8,000여석 공연장을 가득 메운 한인들이 열광의 도가니 속에 하나가 됐다가 질서정연하게 빠져나가는 모습을 본 할리웃 보울 관계자의 감탄이다.
할리웃 보울 잔치 한마당은 한인의 위상을 한껏 부풀리는 계기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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