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지난 주말 PBS TV의 ‘지금’(Now)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해 부에 대한 소신을 솔직 담백하게 피력했다. 게이츠가 세계 최고의 부자인 만큼 재물에 대한 그의 철학에 사회자는 물론 방청객들도 귀를 기울였다.
“비행기가 추락해 100명이 사망하면 언제든 신문에 게재된다. 그런데 1993년도 세계개발보고서 내용대로 유아에 위장염을 일으키는 ‘로타바이러스’로 전세계에서 매년 50만 명이 숨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을 통해 사실을 확인했다. 불쌍하게 죽어 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 마음은 어떻겠는가. 더구나 대부분 현대 의술로 치료할 수 있는데 말이다.”
게이츠는 이 보고서를 보고 놀랐으며 이들의 생명을 구해내기 위한 사업을 자신이 설립한 비영리재단의 시급한 과제로 정했다. 돈을 ‘정승’처럼 시원하게 쓰기로 한 것이다. 돈을 벌면 쌓아두었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지 모른다. 게이츠와 같은 거부는 더욱 그럴 게다. 자신의 ‘머리’로 당당하게 거둬들인 재산이니 후대에 물려 대대로 ‘가문의 영광’으로 삼으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느 갑부와는 영 달랐다.
자신이 번 돈이 자식에겐 “혜택이 아니라 장애”가 될 것이므로 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할 생각이란다. 7살 난 딸의 장래 건전한 삶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함이다. 한국의 일부 재벌오너와 재력가들이 줄기차게 보여온 영악한 편법 상속에 넌더리가 난 평범한 사람들에게 게이츠의 ‘부에 대한 철학’은 신선하다 못해 외경심까지 솟게 한다.
‘애플루엔자’(Affluenza)란 말이 있다. 부(Affluence)와 인플루엔자(Influenza)가 만나서 생긴 단어다. 막대한 상속을 받은 사람이 앓는 일종의 ‘부자병’ 또는 ‘풍요증’을 칭한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부의 세습을 질시해 각별한 애착을 갖고 있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플루엔자를 우습게 볼 것은 아닌 모양이다. ‘돈과 행복의 함수관계’를 연구한 정신분석학자 칼 융에 따르면 풍요증은 의욕감퇴, 의심, 지루함, 죄책감 등 4가지 증상을 보이는 심각한 질환이다. 또 실리콘 밸리의 백만장자 부인 6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돈과 행복이 결코 정비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능력 없는 2세에게 평생 일궈 온 기업을 떠맡겼다가 송두리째 날려버린 ‘작은 부자’와 게이츠처럼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모았으면서도 이를 사회에 되돌리겠다는 ‘큰 부자’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한인사회에도숨은 재력가들이 꽤 있다고 한다. 공들여 모은 만큼 뜻 있게 쓸 줄 아는 ‘큰 부자’가 보고 싶어진다. 경기가 나빠 생계걱정, 학비걱정에 한숨 쉬는 한인들이 많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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