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들이 어려서는 나를 무척 따랐다. 두 직장을 뛰느라 피곤해서 좀 쉬고 싶은 내게 틈만 나면 안겨 왔다. 딸을 바랬기 때문인지 계집아이처럼 예쁘게 생겼었다. 숫기를 길러 준다고 손님들이 오면 <기차길 옆 오막살이>를 불러보라고 했다. 아이는 뒤로 뺀다. 눈을 부릅뜨면 할 수 없이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도 끝까지 불렀다. 지금은 그 노래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지만 아마도 기억조차하기 싫은 추억 일게다.
한술 더 떠서 "얘들아 우리 한국에 나가 살자" 어린것들에게 푸념하면 코방귀도 안 뀌는 두 살 터울 제형을 처다 보고는 묵시적인 동의를 구했는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올스-모빌(그 시절 구입한 중고차)은 두고 가." 갈림길에서도 미국에 남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아빠에게서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도 자기의식을 지켜나간 아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앙금 때문일까 아이는 커가면서 모든 대화를 제 엄마랑 만 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가족의 상상을 뛰어넘어 당당한 체격의 풋볼 선수가 되었다. 어느 날 밤 아이들 방 앞에 커다란 물체가 보였다. 다가가 보니 십자가를 향해 작은 아이가 기도하는 중이었다. 다음날 아침 식탁에서 물어 보았다. "어제 밤에는 무슨 기도를 했니?" 아이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응 여드름 없애 달라고." 소망은 좀 유치한지 몰라도 확신을 가진 신앙심을 확인한 이상 그 이후 아이의 어떤 행동도 믿을 수가 있었다. 세상에서 남에게 신뢰심을 주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아이는 자라면서 방의 선택도 차도 컴퓨터도 제 형이 쓰든 것들을 불평 없이 물려받았다.
제 몫으로 차 살 돈을 마련해 두었다고 해도, 대학으로 가면서 집에서 쓰던 고물 차를 몰고 갔다. 직장 다닐 때는 그 돈을 형에게 주어 새차를 사게 하고 자기는 형의 헌차를 타고 다녔다. 물론 지금은 좋은 차를 사서 제가 월부로 갚아 나간다.
정치학과와 사회사업과를 전공한 아이는 초등하교 때부터 소망하던 경찰관이 된 것도 생각해 보면 그 아이의 심성과 무관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부모가 극구 반대 할 때 아이가 마지막 한말에 함축되어 있었다. "하느님은 남을 도우며 세상을 살라고 하셨는데... 큰 도시의 시장들도 경찰관 출신이야. 대디"
작은 아들이 새로 지은 집을 사서 나간 뒤 아이가 쓰던 방은 내차지가 되었다. 아래층 어두운 방에서 19년 동안 책 읽고 원고 쓰다가, 남향 창문이 있는 그 방으로 옮겨와 보니 아이들이 밝은 곳에서 밝게 자라 새로운 둥지로 떠난 게 정말 다행스러웠다. 작은 침대 자리는 다락방 흉내를 내어 천장이 나지막하게 내려앉아 누으면 둥근 창으로 아이들이 바라보던 별이 보인다. 창 밖으로 나무와 집들, 그것들이 세월강 따라 흐르는 것으로 알았는데 흐르는 것은 오히려 나였다. 풍경은 당신도 언젠가는 떠나겠지, 연민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이는 운동복, 바지, 티셔츠, 신발, 남성용 화장품까지 미련 없이 두고 갔다. 어른들이 저희들만 있게 한 외롭던 기억도 버리고 갔으면 좋겠다. 들고 나가던 코트까지 돌아서서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 순간 그 아이 어린 시절, 샌프란시스코 바닷물에 입술이 파래져서 내게 달려 왔을 때 머리를 말려주고 잠바를 벗어 입혀주었을 때 잠바가 아이의 발까지 내려와도 좋아서 깡충대던 모습이 생각났다.
이제 어딜 나갔다가 그 방에 들어 올 때는 내가 강원도 군대에서 받아본 어머님 편지 생각이 난다. "주말에 다녀간 건너 방은 너의 체취가 날아갈 가봐 차마 열어 놀 수가 없구나"
아이는 다음달 7월 초에 장가간다. 모든 걸 저희들이 준비하고 부모는 몸만 가면 된다. 일년 전에 예약한 산 속 야외 식장에는 연휴이어서 양가 친척들만 초대한다. 그나마 피로연에 내가 초대할 몫은 제가 어려서부터 지켜본 아빠의 선배 몇 분이다.
큰아이 때도 그렇게 해주길 바랬는데 내 친지들을 엄청 불러놓은 처사가, 더욱이 빗속에 찾아온 분들께 생각할수록 부끄러워진다. 아마도 오래 전 나의 결혼식 날, 명동성당이 텅 빌까봐 이리저리 뛰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 계신 아버지 대신 초청인이 되어 주신 아버지 대학 동창 분들의 고마움이 생각나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 날 에는 놈을 대신해서 이제는 예비 며느리가 내게 포옹해주고 떠나갔다.
이제 아이는 <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
김형의 딸이 시집 갈 때도 최선배 아들이 장가 갈 때도 덕담 대신 읽어준 시를 아들에게도 들려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정하 시 : 새를 사랑한다는 말은/ 새장을 마련해/ 그 새를 붙들어놓겠다는 뜻이 아니다./ 하늘 높이 훨훨 날려보내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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