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는 분을 통하여 엿 먹어라라는 말이 왜 욕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듣게 되었는데, 재미난 실제 사건에서 기인한 것이라 흥미로웠다. 때는 바야흐로 1964년 12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문제의 그날, 서울시 전기중학입시 시험이 있었는데, 문제 가운데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있었다. 당시 정답으로 채점된 것은 디아스타제였지만 보기 중 하나였던 무즙도 답이 된다는 것이 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무즙을 답으로 쓴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난리가 났고, 급기야 무즙을 답으로 써서 낙방한 학생의 학부모들은 이 문제를 법원에 제소하였고 어머니들은 항의가 제대로 받아 들여지지 않자 진짜 무로 엿을 만들어 관련기관(문교부,교육청)에 찾아가 엿을 들이밀게 되었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무즙으로 만든 엿을 먹어보라고 솥째 들고나와 시위를 벌이면서 엿 먹어! 이게 무로 쑨 엿이야 빨리 나와 엿 먹어라! 엿 먹어라! 엿 먹어라!.....하였다. 이 엿 사건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결국 당시 서울시 교육감과 문교부 차관이 사표를 내고 6개월이 지나 무즙을 답으로 쓴 학생 38명을 정원에 관계없이 경기중학에 추가 입학시키면서 일단락된 사건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강남 아줌마들의 치맛바람은 못 말린다는 둥 웃으며 들었던 이 이야기가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왔던 한국의 몇몇 주부들이 미국 이민세관국의 조사를 받았다는 기사를 읽는데 갑자기 떠올랐다. 자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특히, 그것이 자식의 교육과 관련된 일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머리로 짚신도 삼을만한 열정을 보이는 한국인의 일면을 보여주는 얘기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게다.
미국에 사는 한인 교포들에게도 낯뜨거운 일이었지만, 실물 경기가 IMF 체제 때 보다도 더 어렵고, 추석즈음에 몰아 닥친 태풍 매미로 수 많은 이재민이 발생한 한국에서 이 소식을 접하는 이들에겐 그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각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에선 연일 이 주제를 다루며 여론조사를 하였는데, 원정출산을 다녀온 이들의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과 개인의 사생활은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하며 다만 그들의 양심에 호소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는 양상이었다. 나의 엉뚱한 상상력은 또 발동하여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뉴스를 접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사실, 아직 아이가 없는 나로선, 이런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게 다가오진 않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나도 곧 아이의 교육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미국에 오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했지만, 미국에 사는 한국인 부모들의 모습은 한국에 사는 한국인 부모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한인들은 용케도 학군이 좋은 곳을 알아내고, 그리로 몰리며 땅 값을 올려놓는다는 말은 한국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자식 교육을 위해서 그렇게 좋아하는 미국에선 자식 교육을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보낸다고 하니 우리가 앞으로 갈 길은 멀고도 멀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삶에 책임을 질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미국시민권과 영국유학을 위해 무리한 방법까지 도모하여 아이를 양육하는 것보다 더 옳은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쯤 시인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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