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갈 거야. 정말?
난, 안 가요.
안 가겠다는 이유가 뭐야?
당신 사과하기 전엔 절대로 못 들어가요.
그럼 여기서 살아. 난 아이들과 함께 갈 거야.
남편은 화난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수지는 일어나는 남편을 멀쑥하게 바라본다. ‘그래 새로운 살림을 하겠다고, 한번 잘 해봐.’ 수지는 혼자 말을 하면서 마시다 만 주스 잔을 들었다.
수지가 아이들과 친정 집으로 잠자리를 옮긴지 하루 밤이 지났다. 바로 어제 저녁 수지 부부는 제 2의 바그다드 공습이 강행되었다. 그 공습은 결혼 구 주년 하루전의 일 이었다.
남편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매년 결혼 기념일을 잘 잊어버린다. 자기 생일도 때로는 나이도 몰라 아내한테 묻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전화번호 역사적인 사건의 날자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옛날엔 결혼 기념일이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특히 이곳 문화엔 부부의 생일과 결혼 기념일을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로 되어있다. 어떤 사람은 결혼 기념일 날 자기들의 신혼여행 갔던 호텔. 부부가 된 것을 인정했던 방에서 옛날을 회상하면서 하루 밤을 지낸다고 했다. 수지는 한국에서 결혼해 제주도로 신혼 여행을 갔다. 이제는 지구의 반대쪽에서 생활을 하다보니 그 먼 곳까지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래도 하루 저녁 외식이라도 하고 장미 한 송이라도 받고 싶은 것이 수지의 마음이다. 아니 모든 여자들이 그런 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 소박하고 적은 정성도 없는 남자를 믿고 십여 년을 살아왔다. 자존심 강한 수지였지만 이젠 그런 것을 다 잊고 평범한 아이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여보, 우리 직장에 얼마 전 결혼한 마이크란 친구 알지?
그 멕시코 사람 말이죠?
그래, 그 친구 결혼 3주년 신혼 여행을 갖다 왔데.
서구 사람들 그렇게 하는 사람들 많이 있는가 봐요.
여보, 우린 그런 여행은 못 가지만 금년엔 둘이서 외식이라도 한번 해요.
수지는 밥을 먹다 남편을 빤히 쳐다본다. 수지는 남편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그 말에 기대하고 있었다. 모처럼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는 마음에서 그 날을 손꼽아 가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의 말을 듣고 자신이 무언가 느꼈기에 수지는 더욱 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결혼 기념일이 토요일이라 아이들은 올케한테 맡기기로 해 놓았다. 그리고 미장원에도 갖다왔고 내일 입고 나갈 옷도 다 준비해놓았다. 수지는 저녁을 먹고 과일을 먹으면서 수줍고 떨리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여보, 내일 어디로 갈 거예요?
주간지를 넘기고 있던 남편은 호랑이 앞에 놀란 토끼눈을 해 가지고 수지를 쳐다본다.
지금 무슨 말이야?
당신이 말했잖아요. 결혼 기념일에 외식이라도 하자고.
수지는 잘 잊어버리는 남편 앞에서 입가에 미소까지 만들면서 남편을 바라본다.
난 그런 약속한 적 없어.
남편은 들고 있던 잡지를 티 테이블 위에 핑계 치다시피 던져 놓았다. 동시에 과일 접시에 놓여 있던 포크가 탁 튀어 수지 앞으로 떨어졌다. 수지의 속이 비틀어지고 있던 중 한방의 미사일의 공격을 받았다. 잡지를 잘못 놓아 그런 실수가 일어났는지, 계획적인 미사일 발사였는지는 솔로몬 왕 앞에 가서 판결을 받기로 하고. 순간 그런 공격을 받은 수지는 소파 옆에 있던 크리넥스로 남편 앞으로 스커드 미사일을 즉시 발사했다. 그렇게 발사한 미사일은 적의 중심인 가슴에 명중되었다. 미사일 공격을 받고 잡지를 들어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렇게 미사일과 악선전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상대방의 심리를 교란시키고 있었다. 그때 녹음기가 전부 휴가를 가고 없어 녹음된 음성이 없어 여기 옮겨 놓지 못해 죄송하네요. 스피커 볼륨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자 연합군으로 큰딸이 나와 하마 같은 스피커로 지원을 했다. 남편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주춤해있을 때 둘째 딸이 고성 방가로 또 지원을 하고 나섰다. 그러자 수지도 더 참지 못하고 다국적 연합 여군(女軍) 들의 합동 울음 공세가 퍼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남편은 미사일도 악 선전도 더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남편의 머리 속으로 초스피드로 떠 올라온 무기. 그것은 최후의 핵 폭탄. 결혼 생활 폭파까지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요. 당신 소원대로 해주죠. 나도 더 못살게네요.
연합군은 제 공격을 위해 즉시 친정으로 옮겨졌다. 남편은 뒤 야드에서 사촌들과 놀고 있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루밤 사이에 아이들의 얼굴이 핼쑥해 졌고 놀고 있는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 전에는 활발하고 놀이를 리드하면서 유쾌하게 놀았던 두 공주. 잠시 후 남편은 수지 앞에 다시 앉았다. 남편의 얼굴 표정은 어제 밤 공격할 때 보다 더 무겁고 심각해 있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수지는 고개를 밖으로 돌린다.
내가 잘못했어. 정말 그동안 내가 당신한테 너무 무관심했어. 앞으론 꽃도 사주고 선물도 해줄게. 우리 공주를 위해 돌아갑시다.
난 당신이 사과하지 않으면 안 가요.
내 잘못했기에 왕비마마와 두 공주 님을 모시러 온 것이 아니요?
어떻게 이혼이란 말을 그렇게 쉽게 입에 낼 수 있어요?
미안하오. 너무 다급하다보니 그런 실수를 했잖아요. 우리의 만남도 10여 년이 넘었소. 우리도 이제 중견 부부요. 꼭 말로만 사과를 해야 하오?
남편은 일어나 수지를 왈칵 끌어안는다. 수지는 못이기는 체 하면서 남편의 가슴에 안겨 가만히 생각해본다.
남자의 실수를 가볍게 받아 주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래 두고보자 앞으로 어떤 공격을 해야할지.
수지의 눈에서는 실망인지, 안심인지 모를 애매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두 공주가 언제 들어 왔는지 수지 옆에 서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빠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 수지는 남편의 품에서 나와 두 딸을 꼭 끌어안는다. 남편도 아내와 두 공주를 꼭 품어준다. ‘이 새끼들을 내가 보호해야지 누가 키우겠나.’ 남편은 아내한테 말을 못하고 마음속으로 깊이 새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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