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스 김<회사원>
한동안 날씨가 따뜻하여 봄이 일찍 오려나 했는데 꽃샘추위인지 비가 오고 춥다. 이 비는 아마도 봄비이리라. 벚꽃나무에 함초롬히 돋아난 여린 싹을 촉촉히 적실 것이다. 작년에 여름에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온 후 무심히 지나치곤 했던 길 하나가 이 번에 보니 양쪽에 벚나무가 있는 길이였다. 봄비가 내린 후 다시 날씨가 따뜻해지면 환하게 꽃방울이 터져 그 길을 눈부시게 장식하고 그 밑을 지나갈 생각을 하니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제 아무리 우울증에 시달리고 계절가는 줄 모르고 사는 사람일 지라도 그 연연한 분홍색이 시야에 가득 차면 기분이 밝아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아름다운 꽃과 싱그러운 새싹을 만들어 내는 봄은 경이로운 계절이다. 그 경이로움은 겨울을 견디어 내었다는 것에서 온다. 벚나무는 겨울동안 그 줄기와 가지가 검고 잎이 다 떨어져서 죽은 나무처럼 보인다. 그러나 봄이 오면 제일 먼저 봄 햇살 가득 담은 꽃잎들을 담뿍 뿌린다.
사람의 일도 계절이 있는 것 같다. 예전 다른 도시에서 한국학교 선생님을 할 때다. 후원자가 나타나지 않고 학생은 점점 줄어갔다. 그대로라면 학교의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았다. 속이 타고 초초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가르쳤다. 어느날 새 후원자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사를 가서 한 시간씩 운전해야 하는데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가 새 후원자가 나타났고 이제 새 장소를 찾아 지금보다 더 먼 곳으로 이사간다기에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었다. 일년 후 학예회 때 가보니 새 후원자와 교사들이 열심히 하셔서 학생들도 늘고 활동도 활발했다. 다시 그 한국학교에 봄이 왔다. 나는 그 전 해에 문을 닫지 않고 열심히 지킨 보람을 찾았다.
봄에 꽃을 피우면 많은 이들이 보아 주지만 겨울나기를 위해 애쓰는 것은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봄은 언제나 겨울의 끝에 있다. 해가 바뀌어도 아직 계절은 바뀌지 않았다. 우리 주위에도 좀처럼 겨울 얼음이 녹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많다 - 일년 내내 눈이 녹지 않은 북극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포기하고 싶은 일들. 그러나 북극에도 봄은 오더라. 겨울나기가 힘들 때면 꽃피는 봄날의 설레임을 떠올려 보아야 겠다. 조금 늦게 올 뿐이지 봄은 꼭 올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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