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주부>
대학교 1학년 때 엄청 호랑이 교수님으로 불리던 교수님의 첫 전공수업 시간이었다. 선배들의 입을 통해 익히 전설(?)을 들어왔던 터라 새내기라며 한없이 들떠있던 우리들의 기를 충분히 죽이고도 남았던 엄숙함이 감돌았다. 다른 수업에서는 첫 시간에는 수업계획서를 나눠주고, 앞으로 대학생활 열심히 하라는 덕담정도로 간단히 수업을 끝내던 전통에 미루어서 내심 빨리 끝내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대뜸 나무에 대해서 정의를 해봐?라며 말문을 트셨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굴려 봤지만 신통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고 사정은 다들 비슷한 눈치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교수님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가는 듯했다.
’아무나 빨리 대답해라’는 심정으로 서로를 쳐다봤지만 우리는 미팅하느라, 선배들에게 밥 사달라고 조르느라, 이 동아리 저 동아리 기웃거리느라 바빴어도 정작 우리가 전공하겠다고 달려든 나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침묵 끝에 교수님께서는 낮은 한숨과 함께 나무는 길이생장과 부피생장을 하는 다년생 목본식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중간고사에서 느닷없이 교수님의 이름을 묻는 시험문제를 내셨고, 수업 도중에 학교 뒷산으로 강의실을 옮기는 일은 예사였다. 그러면 한참 유행하던 10센티미터 통굽 구두에 발을 매달고 기다시피 산을 오르는 내 모습을 보는 일도 가관이었다.
그러나 끝없이 숲과 문화를 알리는 일에 진정코 열심이셨고, 실습 나가서 땡볕에 고생한다며 우리들에게 차 한잔 사주시면서 모처럼 여유를 갖게 해주셨으며,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선배들을 부지런히 불러다 우리들에게 현장의 이야기를 듣게 해주신 것도 교수님이셨다. 졸업 후 뵈었을 때에도 본인의 책 한 권을 내미시며 허허롭게 웃던 교수님이셨는데, 암에 걸리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되어 찾아갔더니 의외로 강건하게 잘 버티고 계셨다.
해마다 가족 사진이 담긴 연하장을 보내드리면서 교수님께서 길러내신 제자가 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산다는 소식 하나 전하는 게 나에겐 크나큰 위로였나보다. 교수님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자, 송구스럽게도 편지 보낼 곳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덜컹 걱정부터 되었으니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처럼 언제나 그 곳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드문 요즘 교수님이 자꾸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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