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연상케 하는 아주 담백한 한국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클래식’ 이란 영화였습니다.
한 장면을 나누고 싶군요. ‘소녀’는 ‘소년’을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합니다. ‘소년’이 다른 소녀를 사랑하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비 쏟아지는 날 캠퍼스에서 비를 맞고 가는 ‘소녀’에게 ‘소년’이 다가와 웃옷을 벗어 우산을 만들어 씌워 줍니다. 이들은 함께 웃으며 뛰었습니다.
’소녀’는 좋아하는 ‘소년’이 함께 비를 맞으며 뛰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소년’이 갖고 있던 우산을 캠퍼스 휴게실에서 일하는 분에게 던져주고 비속으로 뛰어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미칠 듯이 기뻐합니다. 짝사랑하던 그 ‘소년’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소년’을 알고 난 후 ‘소녀’는 달라졌습니다. 기쁨과 환희와 감격이 솟아났습니다. 그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 하는 데도 환희와 기쁨과 감격이 있습니다. 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확인할 때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다니다가 하늘보좌 영광 다 버리시고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순간, 우산이 있는데도 사랑하는 소녀와 함께 비를 맞기 위하여 우산을 버린 소년처럼 우리는 녹아져 내립니다.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 하는 것의 기쁨의 절정은 예수님을 아는 데에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목회를 하시는 2세 목사님이 틴에이저 때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영어를 잘 못하는 부모를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치료가 불가능한 병에 걸려 고통을 받던 중 잠자다가 우는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 어머니가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더랍니다.
예수님 아들이 아픈 것을 더 이상 못보겠습니다. 차라리 제가 아들 대신 죽겠습니다. 이 아들을 살려 주세요 어머니의 큰사랑을 처음 체험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부터 병이 나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그 사랑을 확인한 순간 우리는 회복 받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교회에 사람보고 다니지 마세요. 상처 입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 신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의 사랑을 확인하세요. 그 사랑을 확인한 순간 희열이 물밀 듯 찾아올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클래식’입니다.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목사(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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