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주부>
우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무렵, 외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늘 똑같은 말씀을 되풀이하곤 하셨다. 니가 터를 잘 팔아서 남동생 둘을 보았다. 외할머니는 그 이야길 마치 테이프에 녹음된 말처럼 반복해서 하셨다. 큰아들에 외아들인 사위한테 딸을 시집 보내놓곤 그 딸이 첫 딸을 낳자 늘 노심초사하셨던 외할머니. 그 뒤에 연달아 태어난 외손자를 보신 것이 할머니 평생에 그렇게 좋은 일이었나 보다. 내가 어렸을 때 주위에는 아들을 보려고 딸아이의 이름을 남자처럼 짓는 일이 간혹 있었다. 얼마나 효험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들을 향한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하는 일이었으리라.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란 생각을 들게 만든 건 초음파 검사에서 둘째도 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마음이 드는 거였다. 낳아서 예쁘게 길러보지 뭐 딸 많은 집들이 더 화목하다구 그리고 나선 양쪽 부모님들한테 어떻게 말씀드리나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신세대’라고 자부하는 나였는데 내 안에도 아들을 향한 이런 욕심이 있었나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둘째도 딸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도 다들 비슷했다. 우선 안됐다는 표정이 잠시 스쳐가고 이어서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딸들이 키우는 재미가 더 있다’고 말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아예 셋째도 낳아보라고 은근히 권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이상한 건 남들이 뭐라고 하기 전에 저 딸딸이 엄마 됐어요라며 선수치는 나였다. 마치 혼나기 전에 미리 잘못을 고백하는 아이처럼 잔뜩 주눅들어있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뱃속에서 이런 엄마의 마음을 다 엿보고 있을 아이한테 미안해졌다. 첫째를 분만실에서 품에 안았을 때 세상 모든 사람들도 어머니한텐 다들 이렇게 소중했음을 느낀 게 얼마나 됐다고 그새 까먹고 있었나보다. 아들이라서 더 소중하고 딸이라서 덜 소중한 것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아이한테 죄를 짓고 있었다.
아가야! 엄마는 실수투성이지만 그래도 늘 잘해보려구 노력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잘못한 거 다 용서해주고 건강하게 있다가 엄마랑 만나자. 뱃속의 아기가 발로 찬다. 접수했다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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