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주부>
언젠가 모 TV프로에서 전태일에 관한 방송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전태일과 그의 동료들이 처했던 비참했던 환경에 대한 사실적인 증언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점심값이 없어 굶는 어린 직공들에게 전태일이 자주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곤 했었는데 차비가 없어진 전태일이 공장이 있는 동대문에서부터 우이동 집까지 걸어다녔다는 일화였다. 동대문에서 우이동까지 가려면 지하철 정거장만으로도 열 정거장이 넘는다. 그 길을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 출근해야하는 전태일이 걸어다녔다고 한다.
겨우 열 두세 살에 공장으로 보내져 밥벌이를 해야하는, 피지도 못하고 지는 어린 직공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다운 마음이 있었기에 그 먼길을 걸어야 함에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두서 없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조광조에 관한 것이다. 사춘기시절 수학하던 친구와 같이 서당을 다녀오던 조광조가 아주 아리따운 여인이 지나가는 광경을 보았다고 한다. 조광조는 그 여인의 미모에 마음이 끌려 자꾸만 뒤돌아서 그 여인의 가는 길을 훔쳐보았다. 그런데 옆에 있던 친구는 눈 한번 꿈쩍하지 않고 제 갈길 만 갔다. 집으로 돌아온 조광조는 어머님께 낮에 있던 일을 말씀드리고 자신은 친구에 비해 수양이 덜 쌓인 것 같다고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뜬금없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놀란 조광조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젊은 사내마음에 예쁜 여자를 보면 끌리는 건 당연한 이친데 네 친구는 그런 인간다운 데가 없는 녀석이다. 그렇게 독한 녀석하고 친구가 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래서 떠나려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후에 조광조를 기묘사화로 유배시키고 죽음으로 내모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반대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어머님께서 염려하셨던 그 친구였다고 한다.
잘나고 똑똑하지 않아도 사람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사람을 바라보는데 연민이 있고 안타까움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요즘 한국의 정치상황이 참 어렵고 힘든데 ‘사람의 마음’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이 없어서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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