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주부>
며칠 전에 영화 ‘올드보이’를 보았다. 보는 동안 긴장감이 끊어지지 않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함(당대 최고의 연기파배우라는 최민식이 주인공이었다)이 없었고, 스타일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이른바 웰메이드영화였다. 그런데 보고나선 씁쓸함이 오래갔다. 영화를 보기 전에 매체를 통해 영화에 대한 약간의 정보도 가지고 본 터라 잔인한 장면은 요리조리 피해가며 지뢰밭 건너듯이 봤지만 나를 발목 잡았던 커다란 대인지뢰(?)는 피해갈 수 없었다.
영화는 15년 간을 이유도 모른 채 사설감옥에 갇혀서 텔레비전과 군만두로 연명하던 남자가 세상으로 나오면서 시작한다. 남자는 당연히 자신을 감옥에 가둔 사람을 찾아내 복수하려고 한다. 남자가 갇혀있는 사이 아내는 누군가에게 피살되었고 어린 딸마저 해외로 입양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복수에 대한 집념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남자에게 가둔 남자는 순순히 자신의 얼굴을 내밀며 며칠 안에 왜 가두었는지 알아내면 자신이 죽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남자는 세상에 나오면서 일식집에서 일하는 젊은 아가씨와 알게되었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적극적으로 남자의 복수를 돕게 된다. 남자는 진실을 추적하던 중 고등학교 때 자살을 했던 여자동창생과 이 일이 관계가 되었음을 알게되고 자신을 가둔 남자를 찾아가게 된다. 사건의 진실은 어느 호기심 많은 사춘기 소년이 무언가를 보았고 그걸 무심히 친구한테 이야기한 것이 한 사람을 자살로, 남은 한 사람은 이야기를 발설한 사람을 15년 간 감금하고 그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는 동시에 인륜의 죄를 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를 참 당혹스럽게 했던 것은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근친상간’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예전 같으면 표현 못했거나 아니면 은근히 암시하는 데서 끝났을 텐데 이 영화는 그런 에누리가 없었다. 그 것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데 중요했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보는 사람을 당혹시킬 만큼 적나라한 묘사였다. 옛날 흑백영화를 보면 여배우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 일부러 뿌옇게 보이게 해서 신비하고도 아름답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영화는 많은 환상들을 걷어내고 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너무 자세히, 너무 가까이, 그래서 너무도 참혹하게 많은 걸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시네마천국’같이 보고나선 행복하고 따뜻한 여운이 오래 남기만을 바라는 건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나만의 오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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