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리베라의 ‘김스 드라이브 스루 데어리’ 앞을 지나던 동네 주민들이 붙어 있는 글을 살펴보고 있다. <이승관 기자>
‘정’을 팔았던 한인아저씨…
가게서 괴한 총격 큰 수술후 회복중 “주민들이 고마울뿐”
그는 10센트, 20센트의 이윤이 남는 ‘물건’보다는 ‘정’(情)을 팔았다. 자신도 모르는 새 팔려나간 그 정은 동네 사람들의 마음에 담겨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던 그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돼 돌아왔다.
8일 피코리베라 로즈미드와 베벌리의 ‘김스 드라이브 스루 데어리’ 앞. 지난 2월1일 괴한으로부터 머리에 총을 맞아 삶의 기로에 섰던 김태경(61)씨의 업소 앞은 아직도 동네 주민들이 가지고 오는 양초와 꽃, 회복을 기원하는 글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돈이 모자라도 물건을 주던 당신은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로사 “미스터 김 아저씨, 이 가게는 피코리베라에서 최고의 데어리였어요. 빨리 나아요.”-아레느
웃는 아저씨가 그립다는 꼬마들의 그림부터 돈 없다고 무시하지 않아 고마웠다는 감사인사까지 동네 주민들은 친구 ‘Mr. Kim’을 여전히 그리고 있었다.
저소득층 히스패닉이 다수인 이 동네 주민들의 김씨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사고 다음날부터 김씨의 쾌유를 기원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해 3주간이나 이어졌다. 특히 300명이나 나온 집회에는 피코리베라 시장과 셰리프국 간부들까지 나왔다.
빠듯한 형편임에도 이들은 미스터 김을 위해 쌈짓돈까지 털어 2,000달러가 넘는 기금을 걷어 보냈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큼직한 배너에 쾌유를 비는 글을 적어 선물했다. 지역 주민들의 김씨에 대한 기억은 ‘친절하고, 항상 웃고, 무언가를 베풀어주는’ 넉넉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쌓인 지역주민들과의 신뢰는 그를 지역주민과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촛불집회를 개최하고 돈을 걷어 김씨에게 주는데 앞장섰던 메리 로씨는 “매일 아침 학교를 가기 위해 가게 앞길을 건너는 아들을 잘 살펴봐 준 김씨는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면서 “다시 돌아와만 준다면 안전하게 가게를 운영할 수 있도록 주민들과 함께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병원에서 퇴원해 LA 자택에서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2번의 큰 수술을 통해 많이 좋아졌지만, 오른쪽 어깨 신경이 마비됐고 입을 떼는 것도 편하진 않다.
쾌유를 바라는 편지를 수북히 받고, 주민들이 자신을 그리워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씨는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할지 고민이다. 김씨는 “8년간 하루도 안 쉬고 매일 14시간씩 일하면서 야박하게는 안 했다”면서 “주민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 빨리 나아야 되겠다”며 웃었다.
<배형직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