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수<화가>
시카고로 전람회를 하러 떠나야하는 때에 응급결에 ‘여성의 창’에 글을 쓰겠다고 약속을 해버렸다. 바쁜 중에 원고 2회분을 다듬어 보내고, 전람회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내 이름 옆에 (화가)로 표시되어 있었다.
화가는 예술가이다. 예술행위는 참 삶, 순수한 삶을 찾아 끝 없이 나아가야하는 순례자의 길이다. 고행의 길이다. 시도 때도 없이 끼어 드는 혼탁한 세상사에서 벗어나야하며 티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나날을 살아야한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에서 아름다운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내 슬픔 내 고뇌가 색채에 묻어 그림이 되어 나올 때 그 슬픔 그 고뇌 마저도 아름답게 순화시켜야한다.
캔바스 앞에 앉을 때 나는 나자신에게 엄격해야하고 철저해야한다. 기만할 수도 없고, 타인을 의식해서도 않된다. 전쟁터에 나온 병사같이 거짓과 싸워야하고. 외식과 위장은 몰아내야한다. 생각이 잡다하면 그림이 산만해지고 마음이 흐려지면 그림은 생기를 잃고 만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그림은 생명을 잃은 전사자같을 뿐이다. 겉 치레로는 공감을 줄수 없고 공감을 주지 못할 때 그것은 진실일수가 없다. 그래서 예술가는 혼자서만 걸어가는 외로운 사람이며 고독한 사람이다.
어릴적 나는 키가 유별나게 크고 살이없는 불균형의 체격을 가졌었다. 줄넘기도 못하고, 달리기도 못하고, 넘어지기 잘하고,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노는 것 보다 혼자 있기를 즐겼고 만사에 부끄럼을 타게되었다. 감성은 내면으로만 자라게 되었고 그림과 글이 그 돌출구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왜 그림을 그리느냐?’고 누가 물어오면 ‘좋아서 그린다’고 했다. 사춘기가 되면서 마음이 산란해지고 산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생각되었을 때에는 ‘심상낙서’라고 대답을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그림 그리는 행위가 예술에대한, 삶에대한 나의 임무라 생각했고,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 때문에 ‘숙명이지요’라고 말했다. 고희를 바라보는 요즈음, 그렇게 오래동안 숙명처럼 격렬하게 싸워 왔건만 아직도 설익은 내 그림 앞에서 부끄럽기만하다. 그림의 크기도 줄어들고 열정도 색갈도 사그라졌지만 내 마음과 내 정을 열심히 솓아부으며 그린 그림들을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정한 친구들과 공감하며 즐기고 싶어서 지금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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