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 개입에 따른 피난민 10만 명 LST 수송선 타고 극적 탈출
현봉학 박사는 1955년 3월 버지니아 대 의대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뒤 연세대에 강사로 초빙됐다가 6. 25전쟁을 만났다. 그는 해병대 사령관 통역 고문으로 활동하다가 함흥에 진주한 미 10군단의 에드워드 알몬드 군단장에게 발탁돼 민사 고문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맥아더 사령관은 10군단의 철수를 명령했다. 이 소식을 들은 수 천명의 피
난민들이 흥남 부두에 몰려들었다.
현 박사는 알몬드 군단장에게 영하 30도의 혹한에 떨고 있는 피난민들을 함께 철수시켜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으나 군인도 실어 나를 군함도 모
자르고 전쟁터에서는 군인이 우선이라는 답변과 함께 거부당했다.
현 박사는 배를 구하기 위해 에드워드 포니 대령(작전 참모)에게 자문을 구하자 포니 대령은 탱크 등 장비를 실어 나르는 LST 수송선 빈자리에 피난민을 태우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알몬드 군단장이 이 의견을 받아 들여 1950년 11월 말부터 12월 24일까지 9만8,000명의 피난민이 남한으로 이송됐다. 현 박사는 알몬드 군단장 등 지휘부와 함께 마지막 피난선이 출발하기 직전인 12월 23일 흥남에서 철수했다.
현 박사는 한국 전쟁 기간 중에 보건부 장관 고문 등으로 활약하면서도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었으나 지난 1999년 당시 피난민 중의 한 명이 현 박사에 관한 이야기를 밝히고 당시 관련 기록이 확인되면서 KBS TV에서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이라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송해 널리 알려졌다.
현 박사는 미국에서 혈액 병리 임상 분야의 권위자로 서재필 기념 재단 초대 이사장 등을 지냈다. 그의 동생은 냉전 시대 중국 통으로 유명했던 저널리스트 피터 현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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