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수<화가>
‘어떤 그림을 그립니까? 동양화입니까? 서양화입니까?’ 내가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누구든지 맨 먼저 물어 오는 것이 이 질문이다. ‘추상화를 그립니다.’ 추상화를 난해하다고들한다. 난해하다는 말은 해독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무엇을 그렸느냐’하고 전적으로 다 알려고하니 어려워지고 거부되어진다. 추상화에 많이 접하고 작가의 체험에, 창작의 현장에 동참하는 체험이 있으면 해독하기가 쉬워지리라 생각한다.
그림뿐 아니라 조각 문학 음악 건축등 예술의 모든 분야가 그 시대(시대의 종교 ,정치, 사회)를 반영한다고 본다. 미술사를 따로 떼어 생각해 보자. 지난날의 회화(그림)는 자연의 형상들을 통해서 목적을 표현했다. 이런 작품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하고 습관되어진 것 들이다. 이러다가 19세기 무렵부터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개성과 주관을 앞세우고 형태와 색채등에서 회화의 순수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설명언어가 삭제되고 대상이 해체되는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일이 날마다 생겨났다. ‘왜 그렇게 그려야만 되나!’ 하는 조형논리를 근간으로해서 미술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서 표현되고 주장되어졌다. 대중과 그림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고 ‘난해’라는 말이 생겨났다.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비평가가 생겨나고 화상이 생겨났다.
인상파로 시작되던 것이 다다이즘 미래주의 구조주의 초 현실파 입체파 등등 유우롭(파리)을 중심해서 미술사의 혁신이 일어났다. 이 거세고 강한 흐름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전 세계로 확산 되었다. 처음에 ‘전위미술’이라하여 한국에 들어 온 것이 1960년대 초였다. 그 열풍이 대단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광란에 가깝도록 흥분하여 몰입했다. 캔파스의 크기는 실내의 벽면을 넘어서고 떼지어 거리의 벽돌담을 이용하는 ‘벽전’이 열렸다.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재미없고 지루했던 구상에서 벗어나서 비구상(추상)으로 열심히 뛰어들었다. 눈에 보이는 자연의 모방에서 벗어나서 형태를 파괴하고 색채와 흐름으로 내 감성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사회가 다원화 되면서 예술의 형태도 너무나 달라졌다. 콘템포로리 아트(contemporary art)의 다양성도, 깜짝 놀랄 기발한 아이디어도 다원화된 현금의 사회현상이다. 평면(canvas)위에 그리는 추상화도 스스히 뒤로 물러나고 있는 것 같다. 미술사의 흐름도 작가의 창작행위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기에 결코 예측할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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