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선 희<주부>
허리를 펴고 바르게 앉아 먹을 오른쪽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졸지 말고 갈아라. 벼루는 가볍고 손가락으로 두들겨 보아 맑은 소리가 나는 것이 좋은 것이다. 화선지는 양면이 똑 같이 보여도 반드시 앞 뒤가 있다. 마음을 화선지처럼 표백하고 마음의 모서리를 둥글게 갈아라. 그리고 난 후에 붓을 잡아라. 그 당시 나이가 많으셨던 권 영호 선생님의 말씀이시다. 중학교 1학년 때 특활 시간이면 항상 이 말씀부터 하시고는 서예 시간이 시작되었다. 나를 포함한 여러 아이들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흉내를 내곤하였다. 참 바르고 좋은 어른이셨다.
흔히 서예란 학·도·예의 세계라고 말한다. 먼저 글씨를 쓸 때 흰종이 앞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먹을 갈 때에 마음을 갈고 붓을 움직일 때 중심을 잃지 않고, 벼루를 씻을 때 마음을 씻는 도리를 배우라는 것이다. 이것이 곧 배움이요, 사람이 사는 길이요, 고로 인생이 아름다운 예술로 한 폭의 화선지를 메운다고 할까?…
한글 서예는 조선 왕조 25대에 들어 ,세종임금이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라는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궁중에서 글을 깨우친 여인들을 통하여 궁중서체가 자리잡혀 발전한 것이 지금에 이른다. 그 시대에는 누구나 쉽게 쓰도록 만들어진 소리 글자로, 내면에 있는 것들이 여인들의 손을 통해 사회풍자와 더불어 자신의 품은 뜻의 전달의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엔 문장의 비중을 점점 낮추는 반면, 표현 방법에서 문자의 표정 곧 서예의 조형미에 애착을 두고 있음을 많이 본다. 끊임없이 내면적인 탐색이 이루어진 작품 앞에선 한 글자를 썼어도 묘한 깊이와 한도 없이 그 앞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즉 마음을 사로잡아 쓴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았어도 계속 대화가 이루어짐을 경험하게 된다.
서예와 더불어 묵묵히 세월을 속이지 않고 빛 바랜 모습으로 건물마다 달려있는 서각들도 빼어 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칼끝에 숨을 모으고 은은히 풍겨 나오는 나무냄새와 두드리는 망치소리에 온 정신이 하나가 된다. 이마에 흐르는 땀이 글자를 타고 내가 되고 바다가 된다. 세상에 살면서 참으로 사랑하는 일이 있음은 정말로 행복한 일이다. 서예전이나 서각전… 우리 인생들이 차려놓은 전시회라는 의미는 완성된 상태를 보임이 아니라 덜 된 부분을 그대로 보이기 위함이 아닐까.. 글씨의 예술이라지만 그 씌어진 글의 의미가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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