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복고주의다. 가장 비굴하고 못난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 때 과거를 회상하고 그 속에서 안주·위로를 찾으려는 자들이다. 특히 잘못된 사실조차도 무마·합리화시켜가며 복고를 지향하는 자들이 역사의 가장 처참한 패배자들이다.
요즘 한국에서 경제가 어려워지자 과거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박아무개·전아무개 등 시대에 뒤떨어진 독재자들에 대한 신드롬 내지 찬양이 난무하고 있다고 하니 아무리 현실이 어렵다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어느 사회든 ‘억압’과 ‘가난’은 ‘목마름’과 ‘배고픔’과 비교될 수 있다. 자유, 풍요는 그 어느 것도 결코 덜 위중하거나 가볍게 취급할 수 없다. 요사이 경제가 어려워지자 과거 억눌렸던 시절, 물질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물론 세월이 좋아졌다고 해서…,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고 해서 궁핍에 대한 공포가 무마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비록 물질적 환상(경제개발)으로 국민을 우롱했을지언정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었다. 비록 군부 독재였을망정 그래도 잘 살수 있다는 기대감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과도기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 국민들이 겪는 공포는 어려운 현실을 참아내는 것보다 빈곤으로의 전락이다. 위정자는 위정자들대로 국민은 국민들대로 어렵고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멀리서 복고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은 한국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복고주의(독재)는 과거의 영광으로 위장한 개인주의다. 미래보다는 자기시대에 안주하려는 편협한 패배주의다.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비젼도 인내도 아니다. 한마디로 정신적 무정부 상태를 말하고 있다. 독재는 한마디로 무질서를 말한다. 겉으로는 무력을 통한 질서를 외치고 있지만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도 독재가 번영을 가져다준 시대는 없었다. 북한의 김일성 독재가 그랬고, 로마의 네로 황제, 중국의 마오쩌뚱이 그랬다. 위대한 마오쩌뚱을 숭배했던 중국은 요즘 자유 무역시대를 맞아 마오쩌뚱이 저질렀던 문화적·경제적 실책을 만회하느라 수많은 부작용을 겪고 있다. 국민의 귀를 막고 국민의 의지를 가리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바로 독재이다. 그 누구도 감히 자유와 궁핍의 선택 중에서 자유를 위해 목숨을 버렸던 인류 선각자들의 업적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다. 독재로의 복귀는 아무리 물질을 약속해도 결국은 경제의 번영은커녕 정신적 무덤을 파헤치는 위험한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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